[JOB] 工高 출신 '영어 뽀개기' 6년…토익 만점 찍고 '취업 뽀개다'
“Hello. It’s excellent day. I very much thank you for interviewing me today. I am really excited. I am Jun Lee from Overseas business dept from KD NAVIEN….”

올 1월 경동나비엔 해외영업팀에 입사한 이준명 씨. 지난 주말 기자와 만난 그는 자기소개 요청에 즉석에서 거침없이 2~3분간 영어로 대답했다. 도중에 끊지 않았다면 아마 1시간도 계속할 것 같았다. ‘공고 출신으로 21살에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는데 저렇게 유창하게 말할 수 있다니….’

기자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27살인 이씨가 영어를 제대로 배운 기간은 6년. 하지만 이력서에 적힌 토익 성적은 955점. 악수를 하면서 토익 점수가 높다고 말하자 그는 “얼마 전 치른 토익 시험에서는 만점인 990점을 찍었어요”라고 말했다. 동그란 안경테에 단정한 머리, 모범생의 모습이다. 수원공고 졸업 후 경기대 입학, 그리고 경동나비엔 입사. 과연 그를 이끈 힘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경동나비엔 본사 6층 회의실에 들어서자 앞쪽은 세계지도, 벽면엔 세계 주요 도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가 걸려 있었다. 2006년 설립된 미국 현지법인 직원과 화상회의도 수시로 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경동나비엔 홈페이지 채용공고엔 ‘글로벌 경동의 미래를 이끌 사람을 찾습니다’란 문구가 있었다. 단순한 보일러 생산업체가 아니었다.

○취업 대신 대학의 길로

공고를 나온 이씨의 삶을 바꾼 건 평소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대학생 형 누나들과의 대화였다. “사실 제가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는 주로 ‘오늘 저녁에 뭐하고 놀까’였어요. 그런데 형들은 달랐어요. 정치 경제 사회…, 딴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정말 신기했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저렇게 되나 싶었죠.” 대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그를 취업의 길에서 대학의 길로 이끌었다. 공고에서 토목을 전공한 그였기에 대학도 당연히 토목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가 영어에 정작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온 캐나다 어학연수였다. “군 제대 이틀 전 후임 병사가 그러는 거예요 ‘앞으로 세상은 영어를 못하면 안 된다. 영어를 알면 사회에 나가서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요.” 비록 후임이었지만 나이는 4살 많았기에 그의 말대로 해보기로 결심했다. 제대 후 3개월의 준비를 거쳐 영어는 ‘왕초보’였지만 2006년 12월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학연수 중 만난 사람들은 모두 박학다식했어요. 인문학에 매력을 느꼈지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온 인문계 여대생들은 아주 예뻤어요. 그들의 대화에 끼려면 인문학을 공부해야 겠다고 마음먹었죠. 평생 토목과 사람들과 다닐 것도 아니기에….”

하지만 캐나다 어학연수 생활은 쉽지 않았다. 할 줄 아는 영어라곤 ‘예스, 노’뿐인 이씨는 무조건 ‘예스’만 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이렇게 좌충우돌 캐나다 유학 중 우연히 들른 사교클럽은 그에게 영어의 재미를 주었다. “술 종류는 뭐고 주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술을 마실 수 있었기에 악착같이 외우고 또 외웠죠.” 술을 주문하는 실력이 되자 이젠 사교클럽에서 만난 사람과 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자연스레 ‘생활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1년 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영문학을 복수전공하면서 밤에는 동네 영어학원 강사로 뛰었다. 수능영어를 가르치면서 간간이 알려준 ‘일상영어’에 아이들은 좋아했다.

○‘해외영업의 구루’가 꿈

자칭 ‘영어의 달인’이 된 그에게 대학생들의 취업 영어공부에 대해 묻자 직장인영어 스터디 가입을 권했다. “대학생들만의 취업스터디는 너무 정형화돼 있어요. 제가 대학시절 가입한 ‘수원 직장인 영어회화’ 모임은 직장인들이 실생활에서 느낀 애환과 실무적인 문장을 배울 수 있어 좋았어요. ”

대학 졸업과 취업을 앞두고 그는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제가 이왕이면 좋아하는 영어를 맘대로 쓰면서 회사에 수익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는 온라인에서 ‘해외 진출이 활발한 회사이면서 앞으로 크게 성장할 회사는 어딜까’를 검색했다. “아주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배가 대기업에서는 웬만큼 잘해선 빛을 발하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신입이라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견기업에 가서 일을 배워보자고 결심했죠.”

이렇게 항상 배우고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이씨의 성격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도전은 어렵지 않다.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복하면 성공이 온다’고 가르쳐 주셨지요.”

경동나비엔 해외영업팀에서 중동지역을 맡고 있는 이씨는 “내게 꼭 맞는 직장을 택한 것 같다”며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역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에 지루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의욕 넘치는 그에게는 어떤 큰 꿈이 있을까. “전 ‘해외영업의 구루(guru·대가)’가 되고 싶어요. 경영·경제의 구루는 많은데 해외영업의 구루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부족함이 많지만 열심히 배우고 공부해서 후배들이 들어오면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멋진 선배가 되고 싶어요. 나아가 우리나라와 세계의 수많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해외영업을 배우기 위해 경동나비엔을 찾도록 하고 싶습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