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가 정말 열리는 것일까. 의료계 안팎에서 평균수명 증가에 따른 장수 연구가 활발하다. 특히 100세 시대와 함께 안티에이징(anti-aging)이라는 말이 최근에는 웰에이징(well aging) 또는 와이즈에이징(wise aging)이라는 용어로 바뀌고 있다. 평균수명 연장으로 장수하는 것이 현실이 된 만큼 행복하고 건강하게 늙자는 쪽으로 인식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장수의 품질’에 관심이 쏠리는 현상이다.

그럼 장수의 품질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내 최고 장수 전문가로 꼽히는 박상철 가천길병원 암당뇨연구원 원장(전 서울대 노화고령연구소 소장)은 운동과 영양, 인간관계, 사회적 참여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50대 같은 70대를 꿈꾼다

최근 들어 주변에서 나이 든 어르신들을 볼 때 생각보다 굉장히 젊어 보이는 분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같은 나이라도 젊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늙고 병약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전문의들은 그 해답을 ‘생체 나이(bio-age)’에서 찾는다. 생체 나이는 건강·노화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생체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많으면 그만큼 노화가 빨리 진행된다. 그렇다면 생체 나이를 실제 나이보다 낮게 만들 수는 없을까. 박 원장은 “잠만 잘 자도 동년배보다 3년은 젊어지고 골고루 적게 균형 잡힌 식습관을 꾸준히 유지하면 확실히 생체 나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생체 나이를 젊고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첫 번째 필수조건은 운동이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1주일에 사흘 이상, 한 번에 30~60분 운동해야 효과가 있다고 조언했다. 땀이 날 때부터 숨이 차오르기 전까지가 자신에게 맞는 운동 강도다. 하지만 일상에 바쁜 직장인들은 규칙적인 운동이 쉽지 않다. 바쁜 직장인들의 시간·비용·운동 효과 등을 고려할 때 가장 간편한 운동은 걷기다.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지하철 한두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걷거나 아파트 계단 오르내리기를 해도 좋다.

최근에는 소식이 대세다. 전문의들은 적게 골고루 먹는 식습관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많이 한다. 50대가 넘으면 식사량을 과거보다 3분의 1 정도 줄이는 게 좋다. 음식에 대한 소화 능력과 육체적 활동을 감안한 배분이다. 물론 소식의 전제 조건은 영향 균형이다. 서울대 노화고령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장수인들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비타민B12 농도가 짙었다. 이 성분은 육류로 섭취할 수 있다. 그런데 채식 위주의 한국인 장수 노인에게서도 이 성분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연구진은 70대 이상이면서 건강한 노인의 경우 된장·고추장 등 발효식품을 통해 비타민B12를 많이 섭취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식을 찾아라

전라도 고창은 국내에서도 장수촌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지역의 70대 이상 노인들은 대부분 아들·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다. 박 원장은 “가족, 부부, 이웃, 친구와의 풍성한 인간관계는 장수의 품질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특이한 것은 고창지역 노인들이 가족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수다 떨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의료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수명이 남성보다 긴 이유 가운데 하나로 ‘수다 떨기’를 꼽는다. 표정호 순천향대 건강과학대학원장은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외롭지 않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은 장수의 필수조건”이라며 “스스로 감정을 표현하고 이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생체 리듬을 유지시켜 주는 대단히 중요한 인자”라고 설명했다. 표 원장은 “나이를 먹을수록 컴퓨터, 조경 관리 등 새로운 것에 적응하고 배우려는 자세도 생체 나이를 젊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 미네소타주 의학협회가 내린 노인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늙었다고 느낀다 △배울 만큼 배웠다고 느낀다 △‘이 나이에’라고 말하곤 한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고 느낀다 △젊은이들의 활동에 관심이 없다 △듣기보다 말하는 것이 좋다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등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노인의 정의에 물리적인 나이는 포함돼 있지 않다.

생체 나이는 ‘건강한 장수’로 가는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만하다. 물리적인 나이가 아니라 건강과 노화 정도를 수치로 나타내고 단순 수치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감수성 등을 충분히 포함하고 있어서다. 박 원장은 “병원에서 생체 나이를 측정해 자신의 잘못된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은 노년기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