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중립성은 크게 두 가지 원칙을 가져야 한다. ‘네트워크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어떤 기기에나 접속을 허용해야 한다’는 개방성 원칙과 ‘망 이용자를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비차별성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네트워크 운영 원칙이다.

통신산업에서 망 중립성 원칙은 수직적으로 결합한 통신산업의 가치사슬을 분리해 경쟁이 가능한 부분에서는 경쟁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통신산업의 기술 혁신을 촉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이다. 1960년대 말 유선전화 시장에서 단말기 계층을 분리하는 계기가 된 카터폰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카터폰은 1960년대 미국에서 토머스 카터가 AT&T의 전화기 제품에 라디오 기능을 추가해 만든 제품이다. AT&T는 허가를 받지 않고 자신의 제품에 특정 기능을 추가한 카터폰이 ‘불법’이라며 판매를 중단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AT&T가 아닌 카터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소비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라는 판단이었다.

망 중립성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국내외 학계와 산업계에서 수없이 논의한 진부한 문제다. 그러나 망 중립성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진전은 거의 없었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에도 초고속 인터넷 가구당 가입률 세계 1위라는 명성에 걸맞은 혁신성은 없다. 미국이나 유럽 주요 국가의 정책 내용을 단순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국내에서 망 중립성 문제가 전문가 사이의 논쟁거리에서 일반 국민의 관심사항으로 바뀐 계기는 불행하게도 정부 정책 때문이 아니다. 최근 KT의 삼성전자 스마트TV 서비스 접속 차단 조치가 발단이었다. 4일간 접속 차단으로 끝난 이 사건은 우발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점점 가시화하는 정보통신산업의 갈등구조에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라고 본다.

KT와 삼성전자 간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고속 인터넷 가구당 보급률 세계 1위라는 화려함에 가려진 국내 통신산업의 위기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 통신시장은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 초고속 인터넷 가구당 보급률은 2010년 97.5%에 다다랐다. 이동전화 가입률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7.2%다. 개통 이동전화 수가 인구 수를 초과하고 있다.

통신시장 성장을 이끌어온 이동통신시장이 포화 상태에서 가입자 1인당 수입도 정체 내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통신기업의 주가는 과거 수년간 하락세를 지속해왔다. 이 상태에서 통신 트래픽의 폭발적인 증가와 4세대(4G) 이동통신인 LTE(롱텀에볼루션) 서비스 도입에 따른 네트워크 투자 비용과 추가 주파수 할당 대가는 통신사업자에게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결국 통신사업자의 무리수는 십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덩치가 크면 가해자라는 선입견에 편승해 태생 단계의 서비스 제공 서버에 대한 접속을 차단하면서 망 투자비용을 분담하라고 요구한 것은 특정 기기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며 이용자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다. 간접적으로 방통위의 무능함을 드러내기 위한 시위로서는 충분했으나 서비스 이용자나 삼성전자에는 지나친 조치였다고밖 에 할 수 없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과다한 트래픽은 기기나 서비스가 아니고 이용자, 특히 일부 과다 이용자가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인터넷 이용 통계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상위 1% 이용자가 총 인터넷의 20%를 초과하는 트래픽을 유발한다. 또 상위 10% 이용자가 60%의 트래픽을 유발한다고 한다. 무선 인터넷에서는 이 현상이 더 심해 상위 1% 이용자가 모바일 트래픽의 절반가량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처럼 인터넷 이용에서 이용자 간 불균형이 심한 것은 유선 인터넷 요금 제도가 사용량에 관계없이 미리 정해진 금액만 부담하는 정액제인 데 근본 원인이 있다. 월정 요금을 내면 무제한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정액요금제가 트래픽 폭증과 소비자 간 비대칭적 인터넷 이용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다.

인터넷 트래픽 폭증 문제는 이용자가 인터넷 이용에 비용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해결될 수 있다. 방통위는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고 네티즌을 설득했어야 했다. 방통위는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전기요금을 올려야 전기 과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목청을 드높인 지식경제부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둘째 기기 사업자가 네트워크 투자비용을 부담하면 그 비용 부담의 일부는 소비자에게 전가되게 마련이다. 이는 결국 스마트TV 서비스 이용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스마트TV 구매자가 투자비용의 일부를 부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스마트TV 구매자라 하더라도 여전히 케이블을 통해 TV를 볼 경우 그 구매자는 부당하게 통신 네트워크 투자비용을 분담한 것이 된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맞지 않는다. 설사 스마트TV 서비스를 이용해도 정액요금을 인상한 것과 차이가 없다.

셋째 국내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다. 구글이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6.4%를 유발한다고 한다. 그러면 국내 통신사업자는 해외 인터넷 서비스 기업에 망 투자 비용을 분담시킬 수 있고, 실제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있는가?

전 세계 페이스북 이용자가 지난해 말 8억명을 넘었고 국내 이용자가 올 2월 말 630만명을 넘어서는 등 해외 콘텐츠 이용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국내 콘텐츠 사업자에게만 망 투자 비용 분담을 요구하는 것은 국내 사업자끼리 서로 발목을 잡는 것일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 난맥상의 중심에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이곳저곳 눈치 보기에 바쁜 방통위가 자리잡고 있다. 통신시장이 포화 상태인 지금 정액요금 제도를 유지하는 한 네트워크 접속 서비스는 더 이상 통신사업자의 수익창출 수단이 아니다.

네트워크 사업에서 수익을 키울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차별화한 접속을 기반으로 한 차별적 요금 부과이지만 이 또한 급증하는 인터넷 트래픽을 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트래픽은 이용자가 유발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차등 부과하는 종량요금제만이 트래픽 급증과 비대칭적 트래픽 이용을 막고 망 사업자의 투자비용도 마련할 수 있는 해법이다. 방통위는 더 이상 외국의 행보를 살피지 말고 요금제도 개선의 선봉을 자처해야 한다.


권영선 < KAIST 교수 >


△미국 시러큐스대 도시경제학 박사 △재정경제부 사무관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IT서비스전문분과 위원장 △정보통신정책학회 대외협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