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었다. 하나는 어린 시절 처음으로 그의 가슴을 뛰게 했던 소꿉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것, 다른 하나는 파리를 떠나 남국의 아마존 밀림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꿈을 이루기에 삶은 너무나 팍팍했다. 변호사의 보조원, 말단 세관원으로 살아온 그에게 그런 기회는 로맨틱한 환상에 불과했다. 그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나른하고 희망 없는 삶 속에서 그의 유일한 낙은 주말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미술학교라고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그였지만 베끼는 재주만큼은 스스로 대견해할 정도였다. 그래 봬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으로부터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을 들었던 그였다. 그렇게 세관원 앙리 루소(1844~1910)는 ‘선데이 페인터(아마추어 화가)’가 됐다. 원근법이니 명암법이니 얽매이지 않고 그는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는 주말이면 스케치북을 들고 파리의 공원을 돌며 하루 종일 화가로서의 삶을 즐겼다. 그가 자주 찾은 곳은 파리의 식물원(Jardin des plants)이었다. 그곳의 온실에선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는 열대 식물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야자수며 선인장이며 처음 보는 것들을 열심히 스케치북에 옮겼다. 그럴 때마다 어린 시절 꿈꾸던 아마존의 밀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밀림의 판타스틱한 풍경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열대 식물의 스케치만으론 부족했다. 밀림에는 맹수들이 득시글댔고 또 그곳에는 검은 피부의 원주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불로뉴 숲의 동물원에서 맹수를 사생하고, 몽수리 공원에서 야생의 새들을 관찰했다. 동식물도감과 열대 동물의 박제 표본도 그의 ‘원대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됐다. 군 복무 시절 동료로부터 귀동냥한 멕시코 원정에 대한 이야기도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큰 힘이 됐다.

그는 그렇게 그린 열대 풍경을 1886년부터 앙데팡당전(독립작가전)에 출품하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이 내걸리자 비평가들은 원근법과 명암의 부재는 물론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유치한 스타일에 경악했다. 어중이떠중이 다 예술가연하는 게 볼썽사납다는 반응이었다. 인상주의자들이 전통적인 그림의 개념을 뒤흔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나름의 세련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유치한 그림은 새로운 표현을 갈망하던 일부 젊은 작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891년 화가 펠릭스 발로통은 루소의 작품을 ‘회화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치켜세웠다. 자신감을 얻은 루소는 1893년 세관원이라는 ‘철밥통’을 버리고 전업 작가의 길로 나아간다. 그러나 인생 2막은 1막보다도 더 참담했다. 아무도 그의 그림을 사지 않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는 식솔들을 부양하기 위해 바이올린을 켜는 거리의 악사가 됐다.

배는 고팠지만 그의 명성은 하루가 다르게 자자해졌다. 우연히 거리에서 그의 그림을 발견한 피카소는 그 그림의 진가를 한눈에 알아보고 그길로 달려가 루소를 만났다. 이 현대 예술의 거장은 아프리카 등 원시 미술의 순수한 표현에 공감하던 차에 루소의 그림을 발견한 것이다. 정글 한 번 구경한 적 없는 루소는 아이러니하게도 ‘정글 작가’라는 호칭을 얻었다. 아마존의 정글에 가고자 한 꿈은 그렇게 동화처럼 그림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또 하나의 꿈, 소꿉친구와의 사랑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그는 1910년 마치 자신의 죽음을 직감이라도 한 듯 평생 마음에 담아뒀던 영원한 사랑 야디가를 자신의 화폭 속에 영원히 고정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로망인 아마존의 밀림을 야디가에게 바치는 무대로 설정한다. 화면은 온통 열대식물로 빽빽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며 풀은 저마다 식물도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이 가장 잘 보일 수 있게끔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빽빽한 밀림 속에는 온갖 야생동물들이 몸을 숨기고 있다. 한가운데 낮은 포복으로 어슬렁거리는 두 마리의 암사자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고 우람한 덩치의 코끼리는 옹색한 밀림 속에서 갑갑증을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나무 위의 새도 박제된 듯 부동자세다.

위험천만하게도 루소는 야디가를 야생의 밀림 속에 배치했다. 주변에는 핑크빛 연꽃과 뱀 등 성적 판타지를 암시하는 표지로 가득하다. 그는 소파에 알몸으로 기댄 채 왼손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다. 밀림 한가운데 소파라니. 관람객은 이 부조리한 장면에 당혹감을 느끼리라. 부조리한 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오른쪽 위로 살짝 드러난 하늘에는 해가 아닌 달이 중천에 떠 있다. 때는 밤이라는 얘긴데 밀림 속은 벌건 대낮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현실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풍경이다.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존재가 바로 한가운데서 피리를 불고 있는 괴기스러운 원주민이다. 그는 꿈에서나 가능한 일들이 이뤄지게끔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루소 자신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 꿈 같은 일을 그림을 통해 이루려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힘을 다해 작품을 완성한 후 루소는 그림에 ‘꿈’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그렇게 해서 그는 꿈에 그리던 남국에서 야디가를 불멸의 연인으로 만든다. 두 개의 아름다운 꿈은 그렇게 생의 마지막 순간 캔버스 위에 화려한 꽃을 피웠다. ‘세관원’ 루소의 그 소박하면서도 꿈같이 아름다운 세계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꿈인지도 모른다. 야디가의 얼굴 위로 당신이 간직한 마음 속 사랑이 어른거리지 않는가.


◆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생상스 모음곡 '동물의 사육제'

동물의 습성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러나 카미유 생상스(1835~1921)만큼 아름답고 절묘하게 표현한 사람은 드물다. 어린아이들의 교육용 음악으로도 유명한 ‘동물의 사육제’는 14개의 짧은 곡으로 이뤄진 모음곡으로 듣는 이에게 동물원을 순례하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1886년 생상스가 오스트리아 시골로 친구를 방문했다가 그곳의 사육제를 보고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다. 어느 곡 하나 빠지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밀림의 왕자인 사자가 포효하는 모습을 저음의 현악기로 표현한 첫 번째 곡 ‘서주와 위풍당당한 사자의 행진’, 수초 사이로 날렵하게 유영하는 열대어와 시원한 물의 움직임을 피아노 가락에 실은 ‘수족관’, 아름다운 첼로 선율로 유명한 ‘백조’는 오늘도 영화의 삽입곡으로, 발레곡으로, 혹은 애니메이션의 효과음악으로 우리의 귓가를 맴돈다.

그러나 정작 생상스 자신은 이 곡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가 생전에 출판을 허용한 것은 ‘백조’ 단 한 곡뿐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사랑했지만 심오한 작곡가로서의 자신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판단과는 달리 이 모음곡은 대중과 함께하는 음악가로서의 생상스의 위치를 다지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