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침(一針) / 정민 지음 / 김영사 / 296쪽 / 1만4000원

수천년 응축된 세상 이치…사자성어로 쉽게 풀어내
[책마을] 고전의 바늘을 찔러 잃어버린 나를 되찾다

[책마을] 고전의 바늘을 찔러 잃어버린 나를 되찾다

‘자웅난변(雌雄難辨).’ 까마귀의 암수는 분간하기 어렵다는 말로 《시경》 ‘소아’편에 나온다. 시비의 판단이 쉽지 않다는 비유로 흔히 쓰는 표현이다. 이곡, 정약용, 이덕무 등 많은 옛 지식인들은 이 말을 빌려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우기는 혼탁한 세태를 일갈했다. 한문학자인 정민 한양대 교수도 일침(一針)을 가한다. “다들 저밖에 적임자가 없다고 하고 자기만이 해낼 수 있다고 하나, 과연 누가 실상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선거 때만 되면 검증할 수 없는 의혹이 난무하고 흑색선전이 기승을 부린다. 정책 대결은 간 데 없고, 흥신소 수준의 의혹 부풀리기만 횡행한다. 봐 주기가 민망하다. 그 틈에 훼예(毁譽)를 헝클고, 시비를 뒤집어 보자는 속셈이다.”

어지러운 세상, 옛 성현의 지혜가 그리운 이때 《일침(一針)》은 더욱 반가운 책이다. 우리 고전에 천착하며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정민 교수는 옛것을 빌려 오늘을 말한다. 그는 고전에서 시대정신을 길어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웅숭 깊은 성찰,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까지 사유의 폭을 넓혔다.

100개의 글이 ‘마음의 표정’ ‘공부의 칼끝’ ‘진창의 탄식’ ‘통치의 묘방’ 등 네 갈래로 묶였다. 정 교수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가 차츰 사물과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추기급물(推己及物)의 순서를 의식했다”고 설명한다. 글 제목은 모두 사자성어다. 단 네 글자에 불과하지만 수천년에 걸쳐 응축된 세상의 이치가 담긴 생각의 진수이자 사유의 결정체다.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 오히려 간명한 통찰이 필요한 때 아닌가.

‘마음의 표정’은 ‘심한신왕(心閒神旺)’ ‘관물찰리(觀物察理)’ ‘남산현표(南山玄豹)’ ‘지지지지(知止止止)’ 등 청언소품을 추렸다. ‘남산현표’란 남산의 검은 표범이라는 의미로 ‘배고픔을 견뎌야 박히는 아름다운 무늬’를 뜻한다. 검은 표범은 안개비가 7일간 내려도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오지 않는다. 털을 기름지게 해서 무늬를 이루기 위해 숨어서 해를 멀리 하려는 것. 어린 표범은 자라면서 어느 순간 문득 짙고 기름진 무늬로 변한다. 《주역》에서는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고 했다.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는 뜻이다.

정 교수는 “사람도 공부를 차곡차곡 축적해서 문득 반짝이는 지혜를 갖추게 된다”며 “당장 먹고 사는 일에 얽매여 공부를 내팽개친 채 여기저기 기웃대면 문채(文彩)는 갖춰지지 않고 그저 지저분한 개털만 남는다”고 했다. ‘지지지지’는 ‘그침을 알아 그칠 데 그친다’는 말이다. 그는 “사람은 자리를 잘 가려야 한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지지(止止)다. 떠나야 할 자리에 머물러 앉아 있으면 결국 추하게 쫓겨난다”고 말한다.

‘공부의 칼끝’에서는 선인들의 공부 단련법과 지식 경영법을 전한다. ‘묘계질서(妙契疾書)’라는 말을 통해 메모의 힘을 설파한다. ‘묘계’는 번쩍 떠오른 깨달음, ‘질서’는 빨리 쓴다는 뜻이다. 상상의 어원인 ‘견골상상(見骨想象)’의 고사를 통해 ‘이미지를 유추해서 본질에 도달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진창의 탄식’과 ‘통치의 묘방’에도 ‘교자이의(敎子以義)’ ‘수락석출(水落石出)’ ‘불통즉통(不通則痛)’ 등 명편이 가득하다. ‘불통즉통’은 ‘통하면 안 아프고 안 통하면 아프다’는 뜻으로 한의학에서 쓰인다. 정 교수는 “기가 원활하게 흐르면 아픈 데가 없다. 육체만이 아니다. 사회의 기는 언로(言路)로 소통된다. 거슬려도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갈등이 사라진다”고 강조한다.

간결한 문장에 담아낸 깊이있는 사유가 정수리에 침을 놓은 것처럼 달아났던 마음을 돌려세운다. 그는 “고작 네 글자로 문화의 담론을 이끌어내는 지적 전통 속에 내가 속한 것이 자랑스럽다. 이렇게 작은 소통의 길을 내본다”고 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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