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학군사관생 앞에 선 '아덴만의 영웅'
‘영원한 선장’ 석해균 씨(59·사진)가 미래의 여성 리더들 앞에 섰다. 숙명여대 학군단(ROTC)의 초청으로 6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서울지역 학군사관후보생 70여명과 숙명여대 재학생 80여명에게 강연을 했다. 석씨가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단상에 오르자 청중은 큰 박수로 그를 맞았다. 그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위기관리능력”이라는 말로 강연의 운을 뗐다.

“평상시에는 리더가 별로 필요치 않습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필요해지는 거죠.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훌륭한 리더와 그렇지 않은 리더를 가릅니다.” 청중석 곳곳에 있는 예비 여성 리더들은 이 말을 받아 적었다.

석씨는 지난해 1월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에서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한국 해군에 구출된 ‘삼호주얼리호’의 선장 출신이다. 납치 당시 엔진오일에 물을 섞어 배를 정지시키는 등 해군이 작전을 펼 수 있도록 도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구출 과정에서 6발의 총상을 입었지만 280일간의 투병으로 상처를 딛고 일어섰다. 지난달부터 해군 교육사령부에서 안보교육담당관(부이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오는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출마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지난해 11월에는 국제해사기구(IMO)가 주는 ‘세계 최고 용감한 선원상’을 받았다.

석씨는 “아덴만에서 겪은 극적인 위기의 순간을 통해 리더에게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느꼈다”며 자신의 리더십론이 책상머리에서가 아닌 생생한 경험에서 나왔음을 강조했다. 그는 훌륭한 리더의 다섯 가지 요건으로 애국심과 애사심, 희생정신, 인내심, 전문성, 침착성을 꼽았다. 이 가운데 애국심·애사심은 가장 핵심적인 요건이다. 위기 극복의 엔진이 되는 동기유발을 위해 필요하다. 몸을 사리지 않는 적극성을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고된 순간을 참고 견디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전문성은 위기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소양이다. 피랍 당시 그가 배의 속도를 늦추며 해군의 작전을 도울 수 있었던 건 배의 구조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기에 침착성 역시 필수적이다. 석씨는 “누구나 선장이 될 수 있지만 이런 자격을 가진 선장은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연장에 온 여대생들에게 “‘진정한 엄마’가 돼 달라”고 주문했다. 석씨가 말하는 ‘진정한 엄마’는 자식에 대한 모성애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공동체를 우선 생각하며 끝없는 포용력을 발휘하는 이상적인 사회적 리더를 지칭한다. 그는 “지금은 개인주의가 지나치게 만연한 시대”라며 “국가와 회사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아쉬운데 이 자리에 온 여성들이 이런 사람이 돼 달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