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ㆍ동문CEO 대담…정갑영 연세大 총장ㆍ허동수 GS칼텍스 회장
“한국 사회는 지금 도약이냐 퇴보냐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도약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인재를 키워내는 길밖에 없습니다.”(정갑영 연세대 총장)

“우리 시대 인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신뢰와 열정입니다. 이런 인재를 보내주신다면 소중하게 활용하겠습니다.”(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정 총장은 업무를 시작한 지난달부터 등록금 확정, 학사제도 개선 등 대학의 최고경영자(CEO)로서 쉴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을 만나 학교 운영 아이디어를 찾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임무다. 정 총장은 지난달 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대표적인 대학 동문 CEO인 허 회장과 만나 청년 실업 해소방안을 포함한 한국 경제의 발전 방향,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바람직한 인재상 등 대학과 기업이 함께 고민하고 있는 다양한 현안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사회=‘청년 실업’ 문제가 두 분 모두에게 고민거리일 것 같습니다.

▶허동수 회장=청년 실업 문제는 세계적인 불황 탓도 있지만, 한국의 산업 구조가 선진화하는 상황이라 특히 더 어렵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이기려면 기술 집약 산업으로 승부해야 하니까 제조업의 고용에 대한 기여가 크게 늘지 않고 있습니다. 전체 고용을 늘리기 위해선 서비스나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워야 합니다.

▶정갑영 총장=고급 전문인력을 적게 쓰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현대 경제의 흐름이죠. 저도 고용 창출을 위해선 서비스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비스산업은 교역이 어렵기 때문에 국내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가 크죠. 다만 서비스 산업이 크려면 무엇보다 정부 규제가 줄어들어야 합니다. 대학 서비스만 봐도 정원과 등록금, 입학제도 등을 조금만 자율화해주면 당장 해외 학생들을 더 유치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대학의 고용도 함께 늘어나죠. 서비스 산업이 아니더라도 규제는 풀어야 합니다. 규제가 많아지면 고용과 투자가 줄어드는 게 당연합니다. 한쪽에선 이익공유다 공생이다 하면서, 다른 측면에선 고용을 늘리라고 하는 건 양립할 수 없습니다.

▶사회=젊은이들의 자세도 예전과 다르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허 회장=경영을 해오면서 신입사원 면접에는 꼭 참여해왔습니다. 많이 달라졌죠. 전에는 순수성을 가진 입사 후보자들이 눈에 탁탁 띄었습니다. 요즘은 스펙이 훌륭한 지원자들은 많은데 인성을 갖췄다는 느낌을 주는 젊은이들이 잘 보이지 않아요.

▶정 총장=대학 총장으로서 한국의 대학들이 개인의 특성과 창의력을 키워주지 못한다는 점은 깊이 반성합니다. 취업이 어려우니 영어점수 같은 피상적인 지식을 준비하는 데 매달릴 수밖에 없는 학생들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사회=어떤 유형이 현대사회에 맞는 인재일까요.

▶허 회장=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인재는 다른 사람, 회사, 국가 등과의 모든 관계에서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세상이 아무리 빨리 바뀐다고 해도 신뢰가 있으면 적극적이고 선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경쟁이 점점 심해지는 글로벌시대에는 협력 없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협력을 잘하려면 신뢰가 필수죠. 또 하나는 열정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 총장=요즘 학생들 중에는 잠재 역량이 100이라면 70~80의 성과만 나와도 만족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100을 갖고 있으면 200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개인과 사회가 함께 발전할 수 있습니다. 역량보다 더 많은 걸 꿈꾸는 도전정신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허 회장=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2등이 가장 편하다는 걸 알게 모르게 느끼게 됩니다. 큰 실수는 안 하게 되니까요. 우리나라도 선진국 따라하기로 이만큼 왔죠. 하지만 계속 그럴 순 없잖습니까. 도전해서 새로운 걸 창조해야 합니다. 저희 회사도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임직원들이 밤낮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 총장=우리나라 교육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학능력시험에서 한 번 실패하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미국을 예로 들어 보면 고등학교 때 공부를 좀 덜해서 커뮤니티 칼리지(전문대)를 가도 이후에 열심히 공부하면 아이비리그(하버드대 등 동부 명문 8개 사립대)에 편입할 수 있는 길이 널려 있습니다.

▶허 회장=제가 미국 위스콘신대로 유학갈 때도 그랬습니다. 1960년대 대학생들 상당수가 정치 문제로 데모만 했지 학점이 누가 좋았습니까. 실패를 경험하고 학과장에게 성적이 안 좋은 이유와 그 대학에 가고 싶은 이유, 그 학과를 나와서 하고 싶은 일을 적어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1년간 기회를 주더군요. 그 1년 동안 다른 학생들만큼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면 정규 학생으로 받아주겠다면서요.

▶정 총장=그런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대학이입학이나 정원, 커리큘럼 등에서 일정 부분은 자율로 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

▶사회=대학 교육 발전 방안은요.

▶정 총장=대학이 발전하는 길은 산업과 똑같습니다. ‘투자’입니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한 강의를 25명 이상 운영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교수가 수백명씩 듣는 대형 강의를 한다고 해도 꼭 학생 20명에 조교 한 명 정도는 배치해 보충 강의를 합니다. 연세대도 등록금을 더 받는다면 그런 인재를 키워낼 수 있습니다.

▶허 회장=기업이 대학에 기부를 더 많이 하라는 말씀 같군요.(웃음) 졸업생들이나 기업의 기부가 선진국에 비해 적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희 회사만 해도 직원이 (대학에) 기부를 하면 회사가 같은 금액을 내주는 ‘매칭 그랜트’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활용도는 낮아요. 아직 우리 사회가 개인의 사회적 기부에 대해 제대로 인식이 잡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회=‘반값 등록금’ 등 복지 논쟁이 많습니다.

▶정 총장=얼마 전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는 학생회 간부들을 만나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더 주는 게 대학과 사회 발전을 위한 길 아닌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저소득층 장학금을 줄이더라도 고지서에 찍히는 금액을 일률적으로 낮춰달라’고 하더군요. 학생들이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복지 주장을 맹종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됩니다.

▶허 회장=우리 사회가 모든 걸 하향 평준화하려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한국이 기댈 곳은 인적자원밖에 없지 않습니까. 발전하려면 경쟁력 있는 인재가 더 나와줘야 하고, 사회 분위기도 달라져야 합니다.

▶사회=젊은이들의 책임도 클 것 같습니다.

▶정 총장=선진국에서 경영전문석사(MBA)나 로스쿨 과정을 밟는 학생들을 보면 학부 시절에는 인문학을 전공한 경우가 많습니다.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 먼저 인문학적인 배경을 갖춘다는 얘기죠. 반면 우리 교육 현실은 대입과 취업이라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 너무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허 회장=대학에서 교육을 좀 더 확실하게 해줘야 합니다. 가령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태블릿PC나 스마트폰에 의존해서 무슨 의문이 생기면 무조건 그것부터 찾습니다. 이건 자신을 도구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스마트기기를 도구로 활용해서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키워야 하는데 말이죠. 사회가 그렇게 된 건지, 대학이 그렇게 교육을 시키니까 그런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학이 좀 더 역할을 해야 하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 허동수 회장은…40년 정유인생 ‘미스터오일’

허동수 GS칼텍스 회장(69)은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공부하는 최고경영자(CEO)’다. 40년간 GS칼텍스에서 한 우물만 파 ‘미스터 오일’이라고도 불린다. 연세대 화학공학과(60학번)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GS칼텍스에 입사해 생산, 기획, 원유 수급, 건설 등 회사 업무 전반을 거친 뒤 2003년 회장에 선임됐다.


◆ 정갑영 총장은…시장 기능 중시하는 경제학자

정갑영 연세대 총장(61)은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경제학자다. 연세대 경제학과 71학번인 그는 1985년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6년 모교의 경제학과 교수가 됐다. 지난해 23년 만에 직선제를 폐지하고 직·간선 혼합형태로 치러진 선거에서 17대 총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민간의 창의와 경제활동이 약화된다”고 강조해왔다.

정리=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