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경제학부의 L교수는 얼마 전 지방의 한 사범대에서 고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L교수가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며 경제적 인센티브에 따라 행동한다”고 말한 순간 강의를 듣던 교사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자가 어떻게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냐”며 반발했다. 다른 교사들도 이에 동조하더니 3분의 1가량이 아예 강의장을 나가버렸다.

◆유명무실한 경제교육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신문과 한국개발연구원(KDI),시장경제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서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은 이유로 부실한 경제교육을 지목했다.

우선 경제 교육의 출발점이 되는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경제는 어렵고, 입시에 불리하다는 인식이 학생은 물론 교사들 사이에서도 팽배하다.

2일 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수능)에서 경제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은 4만1726명이었다. 2006년 8만6666명에서 51.9%나 줄었다.

사회탐구 영역 11개 과목 중 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공통과정 외에 고등학교 2~3학년 때 ‘심화과정’으로 경제를 배우는 학생은 전체 고교생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정치 사회문화 윤리 등 다른 과목을 선택한다.

김진영 KDI 경제교육실장은 “공통과정만 들을 경우 중·고등학교를 통틀어 경제를 배우는 시간은 41시간에 불과하다”며 “시장경제에 대한 기본개념을 가르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경제학 전공 교사도 적어

중·고등학교에서 경제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전문성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경제학 전공자의 비율은 중학교가 5.9%, 고등학교는 10.6%에 불과하다. 전국의 비전공자 중 대학에서 경제 관련 강좌를 2과목도 듣지 않은 비율은 중학교가 47.1%로 절반에 육박한다. 고등학교도 28.3%에 달한다. KDI가 전국 중·고교 경제교사 10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다.

교사들의 재교육 기회도 제한돼 있다. KDI와 한국은행, 자유기업원 등에서 제공하는 경제교육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교사는 연간 1860명 정도다. 전체 사회과 교사 2만5000명의 14분의 1에 불과하다.

교사들의 자질과 함께 주관적인 교과 내용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시장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경제교과서를 분석해보면 기업활동의 목적에 대한 저자의 주관석 해석이 반영돼 있거나 대·중소기업 관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내용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의 4년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신입생 면접에서 경제관을 물어보면 10명 중 9명은 반(反)자본주의를 ‘모범답안’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고등학교에서 민주주의와 사유재산권의 보호 등 기초적인 시장경제의 가치를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다”며 “놀랄 만한 공교육의 공백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