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한 일진들 학교 맴돌며 폭력 대물림
피해자들 '보복 두려워서'…가해자 돌변 피라미드 상납

'보복' 두려워하던 피해자, 가해자로 돌변하더니…
조직적으로 학교 안팎을 장악하고 중고생들로부터 연쇄적으로 금품 상납을 받아온 '일진' 세력이 10일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보복을 두려워한 피해 학생들이 가해자로 조직에 편입되면서 범행이 세습되고 피라미드식 상납 구조가 만들어지는 등 '조폭화' 하는 양태까지 보였다.

학교와 동네 후배들에게서 수천만원의 금품을 빼앗아 일부를 상납하고 나머지는 유흥비로 탕진했다가 경찰에 구속된 김모(18)군도 처음에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중학교 3학년 때 '내 생일이니 돈을 모아오라'는 선배 이모(21)씨에게 무자비하게 얻어맞은 게 시작이었다.

맞지 않으려고 주변에서 돈을 빼앗기 시작하던 김군은 점차 자기가 쓸 돈까지 더 챙기게 됐으며, 원하는 물건을 수첩에 장부처럼 적어두고 후배들을 닦달하는 등 상습적인 갈취 범행에 빠져들었다.

학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한 이후로는 후배들을 자기 오피스텔로 불러 쇠파이프로 때리기도 하는 등 김군은 어느덧 선배 이씨의 모습을 빼닮게 됐다.

김군은 경찰에서 "엊그제 (경찰에 붙잡힌) 그 형(이씨)을 봤는데 후배들이 나를 '저런 사람'으로 봤을까 싶었다.

그 형이 많이 무서웠다.

다른 후배들이 날 그렇게 무서운 존재로만 본다는 것이 불안했고 많이 미안해졌다"며 울먹였다.

김군처럼 이씨 맡에서 가해자로 돌변한 학생 50여명은 강남 일대 학교 20여곳에서 억대에 이르는 금품을 빼앗은 뒤 4∼5단계를 거쳐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이씨에게 상납했다.

고등학교 시절 수차례에 걸쳐 조폭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일진'이었던 이씨는 변변한 직업 없이 학교 주변을 맴돌며 자신과 비슷한 중학생을 상납 피라미드 아래로 포섭, 범행을 대물림하는 역할을 했다.

경찰은 비슷한 형태의 상납구조가 서울시내 일선 학교에 만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학생들은 선배에게 잘못 찍혀 왕따를 당하거나 폭행을 당하는 등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경찰에 신고하거나 부모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불합리한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가해자를 학교 환경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격리조치와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YWCA 학교폭력예방센터 윤수미 간사는 "학교폭력에 대한 징계 수위가 낮은 것이 사실이다.

학교에서 가장 강력한 처벌이 강제전학인데 가해자 측에서 '터전을 떠날 수 없다'며 버티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윤 간사는 "가해자에게 그 어떤 처벌이 가해져도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을 피해 학생들이 알기 때문에 선배가 후배를 때리는 구조가 대물림되는 것"이라며 피해 학생들이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