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굴조사 아니면 주민 불안감 해소 못해"
미군, 시간 끌며 오락가락해 신뢰도 추락

미군기지 안 고엽제 매립 의혹에 대해 한ㆍ미 공동조사단이 7개월여에 걸친 조사 끝에 고엽제가 묻혀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들은 미군이 사실상 주도한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애초에 땅 속을 전부 파서 고엽제가 담긴 드럼통이 있는지 확인하는 시굴조사가 아니면 주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미군 측이 보인 태도도 주민의 불안감과 의구심에 기름을 부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조사 어떻게 했나 = 지난 5월 퇴역 미군 스티브 하우스씨의 증언으로 고엽제 매립 의혹이 불거지자 한ㆍ미 두 나라는 환경부ㆍ주한미군ㆍ민간전문가 등으로 공동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는 땅 속에 고엽제를 담은 드럼통이 묻혀 있는지 확인하는 지구물리탐사, 기지 안팎 지하수의 수질검사, 땅에 가는 관을 박아서 채취한 샘플의 성분을 확인하는 토양시추조사 등으로 진행됐다.

지구물리탐사에서는 지하에 레이저를 쏘는 지표투과레이더(GPR), 전기를 흘려보내는 전기비저항탐사(ER), 금속성을 탐지하는 마그네틱 탐사 등 세 가지 방법이 동원됐다.

캠프 캐럴 내 헬기장과 D구역ㆍ41구역에 대한 지구물리탐사 결과 일부 지점에서 이상 징후가 있긴 했다.

하지만 이들 지점의 토양 샘플을 채취하면서 기반암에 도달할 때까지 파고 들어간 결과 드럼통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하수 수질검사 결과 41구역 내 지하수 관측정 한 곳에서 고엽제 성분인 2,4,5-T가 검출됐다.

그러나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의 적은 양인데다 고엽제 뿐만 아니라 다른 상업용 제초제에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어서 의혹을 충분히 뒷받침하지는 못했다.

29일 한ㆍ미 공동조사단 발표에서 드러난 토양시료 분석 결과 역시 고엽제를 사용 또는 매립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엽제 불순물인 2,3,7,8-TCDD가 검출됐지만 이 성분 역시 다른 제초제에서도 나올 수 있어 결정적 증거는 되지 못한다는 게 공동조사단의 판단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토양시료 분석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고엽제 매립을 의심할 만한 근거가 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비아냥 섞인 해석도 나온다.

◇말 바꾸고 시간 끈 미군…논란 예고 = 기지에서 1㎞도 떨어지지 않은 낙동강 유역 전체의 수질ㆍ토양 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어서 이날 조사결과 발표에도 인근 주민들은 완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운영위원장은 "캠프 캐럴 내의 모든 정보를 갖고 있는 미군이 지점을 정해 샘플을 채취했는데 조사결과를 누가 믿겠느냐"며 "미군이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땅을 파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지 내 땅을 아예 파헤쳐서 고엽제나 드럼통이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게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의 주장이다.

한국 측 공동조사단도 조사 초기 시굴 조사를 제안했다.

하지만 미군 측은 레이더 등 지구물리탐사 결과를 토대로 시추조사를 하고 그래도 이상징후가 발견되면 시굴조사를 해보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조사방법을 결정하는 단계부터 '우회로'를 선택한 것이다.

의혹 제기 이후 조사 과정에서 미군이 말을 바꾸거나 시간을 끄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

공동조사단은 이날 공개한 토양분석 결과를 당초 9월말~10월초에 발표할 계획이었고 10월 중순 샘플들에 대한 분석을 대부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별다른 설명도 없이 최종 조사결과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해를 넘기기 직전 마지못해 공개하는 모양새가 됐다.

공동조사단의 한국 측 관계자는 "200가지가 넘는 성분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조사가 생각보다 늦어졌고 미군이 과거 근무자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미군은 의혹이 제기된 직후 "2004년 기지 내 관측용 관정 13곳에 대해 토양 샘플을 채취해 조사한 결과 한 곳에서만 다이옥신이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공개된 보고서에는 D구역과 41구역 모두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된 것으로 적혀있어 축소ㆍ은폐 의혹이 일었다.

미군은 검출된 다이옥신 농도에 대해서도 1.7ppb(10억분의1)이라고 했다가 1.7ppt(1조분의1)로 정정하는 등 오락가락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공동조사단은 이날 결과 발표를 끝으로 토양ㆍ지하수 오염이나 고엽제 매립ㆍ사용 여부에 대해 추가 조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근 주민이 조사결과를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탓에 현재 진행 중인 주민 건강영향조사 결과에 따라 이번 조사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다시 거세질 수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te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