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지원인 1명 뽑을 돈이면 청년일자리 5~6개 만드는데…"
법무부가 28일 자산 규모 3000억원 이상의 상장회사는 내년 4월부터 반드시 준법지원인을 두도록 하는 내용의 상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강행하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기업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사회적 여론을 감안하지 않은 일방적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상장회사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준법지원인제 적용 기업을 자산 3000억원 이상으로 정한 것은 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으로 재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준법지원인제는 입법 과정과 제도 자체에 문제가 많아 대통령이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까지 고려했던 사안”이라며 “준법지원인제의 당위성만 강조하면서 일방적으로 변호사들에게 유리하게 결정됐다”고 꼬집었다. 또 “사외이사제, 감사제, 내부회계관리제 등 다양한 준법통제제도가 중첩적으로 도입돼 있어 준법지원인제는 전형적인 중복 규제”라고 비판했다.

전경련은 성명에서 “내년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준법지원인을 상시 고용하도록 하는 것은 기업들에 많은 부담을 줄 것”이라며 “고임금의 준법지원인 일자리 창출보다는 5~6명의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개선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최소한 초임 임원급 대우는 해줘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비서 비용을 제외하고 본인 급여와 차량 지원비, 품위 유지비 등만 고려해도 최소 연간 1억5000만원은 들 것”이라며 “대졸 초임을 2500만원으로 잡으면 6명의 신입직원을 채용할 수 있는 비용”이라고 말했다.

또 “그동안 경제계와 학계, 법조계가 모여 적용 범위에 대해 각각 자산총액 2조원 이상, 5000억원 이상, 1000억원 이상을 주장했던 점에 비춰볼 때 이번 입법예고가 법조계 입장을 두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시행령 내용은 기업 윤리경영을 강화한다는 애초의 법 취지를 내세워 포화상태에 이른 법조 인력을 고용하도록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수봉 대한상공회의소 조사1본부장은 “그동안 경제계는 준법지원인제도 시행에 따른 기업부담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용대상 범위를 좁게 설정해 줄 것을 요청해 왔으나 이 같은 주문이 입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준법감시인이 있는 금융회사를 제외한 상장사 1668개 가운데 자산 3000억원 이상은 391개사로 23.4%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673개 중 334개로 49.6%, 코스닥은 995개 중 57개로 5.7%다.

준법지원인 문호는 다소 넓어졌다. 변호사와 법학교수 외에 기업 법무팀 경력자와 감사, 준법감시인 경력자도 준법지원인이 될 수 있다. 일반 직원의 경우 법학사 이상 학력과 사내 법률부서 10년 근무 또는 법학 석사 이상 학력과 사내 법률부서 5년 이상 근무하면 자격이 된다.

준법지원인은 ‘준법통제기준’을 마련해 임직원의 준수 여부를 관리하고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법무부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공동으로 ‘준법지원인 운영 모범 모델’을 제정할 예정이다.

김수언/임도원 기자 sookim@hankyung.com

■ 준법지원인

기업에 고용돼 내부의 의사결정 및 업무 집행에 대한 통제시스템을 마련하고 상시적으로 법적 위험을 진단·관리하는 법률 전문가. 기업 경영에 따른 각종 분쟁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됐다. 변호사, 법대 교수, 준법감시인, 감사 등으로 자격이 제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