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펙 더이상 채용기준 아니다…인성검사·구조화 면접으로 인재 골라
졸업을 앞둔 구직자들 사이에서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SK텔레콤은 올해 채용 방식을 대폭 바꿨다. 상반기 채용에서 절반 정도를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한 것이다. 90명가량의 인턴을 뽑아 그 가운데 45명을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채용 기준에서도 획일성을 걷어냈다. 대학 재학 중에 특허를 40개 정도 출원한 ‘발명가’와 월 수억원의 매출을 거둔 쇼핑몰을 운영하다가 채산성 악화로 폐업한 ‘전 CEO’ 등을 학력이나 영어 점수에 상관없이 채용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중에서도 스펙 좋은 사람이 아니면 못 간다’고 알려졌던 회사가 신입사원 채용에서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SK텔레콤이 이런 변화를 시도한 데는 ‘학점이나 어학시험 점수 등 이른바 ‘스펙’이 좋은 인력만 가지고는 기업을 꾸려갈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회사 관계자는 “정형화된 스펙을 갖춘 모범생들만 뽑아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펙 중요도 낮춘다

최근 주요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스펙에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구직자들이 온갖 경로로 쌓아놓은 스펙에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화려한 스펙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굳이 차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삼성전자 인사팀의 한 관계자는 “이력서에 아무리 화려한 경력을 쓴다 해도 실제로 그 사람이 업무를 잘할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요즘 인사담당자의 가장 큰 고민은 스펙을 배제한 상태에서 어떻게 좋은 인력을 판별해낼 수 있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각종 심리검사 기법을 활용해 구직자의 인성을 파악하고 실전을 병행하는 면접을 통해 업무 능력을 가늠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남건욱 하이닉스반도체 인사그룹장은 “처음부터 일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구직자의 잠재 능력과 품성을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요즘 구직자들이 하도 준비를 철저히 하는 터라 채용 프로세스도 매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했다.

◆면접 기법도 진화

화려한 스펙 더이상 채용기준 아니다…인성검사·구조화 면접으로 인재 골라
지난해를 기점으로 주요 대기업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구조화 면접 기법(structured interview)’은 이 같은 고민의 산물이다. 구조화 면접은 미리 정해진 질문을 구직자에게 던지고 답변에 따라 시나리오별로 추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일종의 대면 심리 검사인 셈이다.

핵심은 첫 질문 이후에 이어지는 후속 질문들이다. ‘행동사건면접(BEI)’라고 불리는 질문 방식은 이력서를 바탕으로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한 뒤 사전에 정해진 질문을 다시 물어 경험의 강도나 수준을 파악한다. LG그룹의 채용담당 관계자는 “첫 번째 질문이야 미리 준비가 가능하지만 두 번째나 세 번째 질문에서는 대개 그 사람의 생각과 개성이 드러나게 마련”이라며 “사전에 정해진 질문을 연속해서 던지면서 구직자의 특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된다”고 전했다.

◆채용 인력 다변화

아예 채용 인력을 다변화해 고스펙 구직자만 뽑는 위험을 회피하려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올 하반기 공채 인력 120명 가운데 상당수를 지방대 총장 추천전형, 전역 장교 특별전형 등을 통해 충원할 계획이다. 고졸 출신으로 유통업에서 경력을 쌓은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학력 제한도 없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신입 사원 때부터 매장 관리를 담당해야 하는데 이력서와 면접만 가지고 채용하는 방식을 고수하다가는 자칫 필요한 인력을 뽑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LG SK 등 많은 기업이 인턴 제도와 정규직 채용의 연결고리를 대폭 강화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력서나 면접만 갖고는 알 수 없는 업무 처리 능력이나 품성 등을 6주 내외의 인턴 과정을 통해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대기업의 채용 방식이 학력이나 학벌보다는 실무 능력 중심으로 급속히 이동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구글이 상상력이 뛰어난 ‘괴짜’들을 집중 채용하는 것처럼 ‘끼’와 전문성, 실무 경험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