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방랑'은 문학을 만들고 '가족'은 지혜를 키워
입시철을 맞으면 생각나는 소설이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수레바퀴 아래서》가 아닐까. 아마도 10대에 통과의례로 겪는 입시 강박이 동일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던 측면이 있을 것이다.

입시 강박의 사회는 100여년 전 독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헤세 역시 이 소설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처럼 신학교에 들어가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문호로 거듭났다. '새가 알을 부수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부숴야만 한다. ' 《유리알 유희》의 글처럼 그는 마침내 알을 부수고 나와 자신의 세계를 열었던 것이다.

헤세는 "열세 살 적부터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며 알을 깨는 여정에 나선다. 헤세를 키운 것은 '방랑의 힘'이었다. 신학교 중퇴,자살 미수 등 젊은 날 극심한 고통과 방황을 겪는다. 급기야 아버지는 열일곱 살의 헤세를 시계공장 기술 견습공으로 보냈고 그는 여기에서 15개월간 일하게 된다.

공장에서 매일 선반 앞에 서서 줄질을 하고,구멍을 뚫고,절단하고,납땜과 인두질을 하는 등 기벤라트처럼 일했다. '공포와 증오와 자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나의 시인으로서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미친 듯한 질풍노도의 시간은 다행히도 지나갔다. '

이어 헤세는 서점 점원으로 일하며 수많은 책을 읽고 점차 안정을 찾은 끝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24세 때 점원 생활을 그만둔 그는 이탈리아 여행에 올랐고,2년 후 다시 이탈리아를 여행한다. 젊은 날의 고통과 방황을 겪은 그는 27세 때 자전적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출간하면서 본격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헤세는 평생 방랑과 은둔의 삶을 지속하는데 이는 소설과 시,그림을 넘나든 그의 예술혼의 원천이 됐다.

방랑과 경건의 삶은 바로 그의 가족사와 연관돼 있다. 헤세를 키운 또 하나의 힘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집안에서는 늘 성경이 읽혀지고 인도 언어와 석가,노자 등 동양 학문 연구가 행해졌으며 음악이 연주되고 또 만들어졌다. 헤세의 집은 종교적이고 음악적인 분위기와 함께 동서양의 학문이 교차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집에는 늘 낯선 세계를 다녀온 여행자들이 드나들었다. 그의 문학이 동서양을 아우르는 것은 가풍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가족을 만드는 7가지 원칙》을 쓴 필 맥그로는 가풍이야말로 가족을 하나로 묶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경건주의적이며 은둔적인 헤세의 삶은 선교사와 목사,학자였던 그의 선조들에게서 볼 수 있다. 선조들은 인도에서의 선교사 일로 인연을 맺었다.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는 《말레이어 대사전》을 편찬한 언어학자이자 목사인 헤르만 군데르트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는 러시아 추밀원 고문관이며 의사로 활동하다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요하네스는 일생 동안 동양의 정신세계에 몰두했으며 아들인 헤르만에게 인도와 중국의 지혜를 연구하도록 이끌었다. 요하네스는 《그리스 이전의 진리의 증인 노자》를 저술했는데 헤세는 아버지를 통해 노자를 알게 됐다. 《싯다르타》와 《유리알 유희》에는 힌두교와 불교,유교와 도교의 지혜가 녹아 있다. 우리에게 헤세의 작품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동양적 지혜와 정신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효찬 < 연세대 연구원 · 자녀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