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재판 방청석…아기 안은 여인이 '훌쩍'
지난해 말 서울의 한 지방법원 법정.사기 사건 피고인 2명이 재판을 받는 와중에 한 명이 다른 피고인의 범죄에 대해 증언석에 앉아 진술을 하고 있었다. 서로가 상대방이 주도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책임을 미루는 상황.

증언석에 앉은 피고인이 '그냥 돈을 벌 수 있다기에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진술하자 다른 피고인이 갑자기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일어나 피고인석에 놓여 있던 마이크를 집어 던졌다. 다행히 마이크는 연결된 전선에 걸려 상대방 피고인에게 못 미쳐 떨어졌다.

재판장은 "당신의 이런 행위는 양형에 반영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검사도 나중에 구형할 때 "법정에서 마이크를 집어던질 정도로 악질"이라며 엄벌을 요청했다. 해당 피고인은 결국 상대방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법정은 증거와 법 논리를 다투는 곳이지만 때로는 뜨거운 감정 분출의 장으로 변한다. 법정에서 드러나는 안타까운 사연이나 악질적인 행각 등은 사건 관련자들은 물론 법조인들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할 때가 있다. '악어의 눈물'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섣부른 감정 분출은 법의 심판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징징 짜는 것 보다 자백이 형량에 유리

젊은 조직폭력배들의 재판에는 십중팔구 나타나는 게 있다. 어린 아기를 안은 젊은 여성이다. 일단 변호인들은 피고인에게 "철 모를 때 조직범죄에 가담해서 이후에는 건전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죠?"라고 운을 떼며 변론을 시작한다. 조폭으로 인정받으면 형량이 더 세지기 때문이다.

피고인은 평소에 눈이 좋다가도 재판 때만 되면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쓰고 나와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 한다. 이어 반성의 기미를 보이며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부양 가족과 함께 새출발을 하겠다"고 진술하면 방청석에 있던 젊은 여성이 '흑~' 하고 눈물을 흘린다. 타이밍을 맞춰 안겨 있던 아기도 '응애~' 하고 운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여자가 조폭의 아내나 동거녀인지,아이도 혈육이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며 "판사들이 혹해서 가벼운 형량을 선고하고서는 재판이 끝나고 '○○○ 검사,내가 속은 건 아닐까?' 하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대구지검 출신 K변호사의 조폭 재판 경험담.'전국구'로 불리는 거물급 조폭 두목을 잡았는데 법정에 애인으로 보이는 30대 여성을 제외하곤 방청객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최후진술을 앞두고 갑자기 피고인석을 박차고 나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억울하다"고 엉엉 울면서 선처를 호소했다. K변호사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법정에 조직원들을 못 나오게 한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악어의 눈물' 최후

'악어의 눈물'(가짜 눈물 또는 위선적인 행위)을 들키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N변호사는 형사사건 항소심을 맡았는데 피고인이 법정에서 반성하며 눈물까지 흘려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판사가 이혼소송을 낸 부인과 아들이 쓴 편지를 보여줬는데 "피고인이 바람도 피웠고,합의 보라고 아들이 준 돈도 떼먹은 나쁜 사람이니 제발 엄히 처벌해 달라"고 쓰여져 있었다.

N변호사는 "판사가 피고인을 가증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얼굴을 붉혔다. 피고인이 낸 항소는 기각됐다. 판사 출신 Y변호사는 "의뢰인들에게 '가급적이면 눈물을 흘리는 등 평정심을 잃은 모습을 보이지 마라'고 조언한다"며 "징징 짜면서 판사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변호사에게 흥분은 적

변호사들은 냉정을 유지할수록 유리하다. 지난 8월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의 파기환송심 세 번째 공판에서 피고인인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 측 변호인은 검찰 측 증인인 이달영 전 외환은행장 직무대행을 상대로 반대심문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유 전 대표가 보냈다는 이메일을 공개하자 검사는 "이 전 은행장에게 보낸 것이 아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변호인은 "반대심문에 검찰이 무슨 권한으로 관여하냐,같이 법을 배운 사람끼리…"라고 큰소리쳤고 검사는 "검찰이 왜 그럴 권한이 없느냐.검찰을 모욕하는 것이냐"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즉각 "죄송하다. 발언을 취소하겠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이후 냉정을 찾은 변호인은 차분히 변론을 진행했고,최근 검찰 구형(징역 10년)보다 낮은 징역 3년형 선고를 받아냈다.

◆감성이 흐르는 판결문

판결문에 감성을 담는 판사도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36민사부의 김정원 부장판사는 지난 5월 의뢰인이 변호사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하고,변호사는 "부당한 고소"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화해 권고를 하면서 결정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기억이라는 유령은 벗할 이 없이 홀로 방황하다가 세월이라는 사냥꾼에게 붙들려 과거라 불리는 계곡으로 끌려가면,거친 추억의 볼모로 잡혀 망각의 늪에서 헛되이 몸부림치다가,역사라는 미로의 바다 어느 전설의 섬에서 마침내 신화가 된다. " 김 판사는 "이 사건이 더 이상의 고통없이 분쟁이 없었던 상태처럼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관용과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재는 법무법인 바른에 있는 박철 전 대전고법 부장판사는 2006년 재직 당시 임대주택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노인 관련 사건에서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대한주택공사)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인다"고 적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임도원/이고운/김병일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