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47번가 다이아몬드딜러스클럽(Diamond Dealers Club) 10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금속탐지기다. 가방은 물론 몸까지 검색을 받고서 안쪽으로 들어서니 키파라고 불리는 유대인 전통 모자를 쓴 사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삼삼오오 모여 돋보기로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들은 다이아몬드 딜러. 마이클 그루멧 다이아몬드거리 사업개선위원회 이사는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모여든 다이아몬드의 90%가 다이아몬드 거리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아몬드 가격 상승에 거리도 호황

맨해튼 47번가의 5번 애비뉴와 6번 애비뉴 사이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거리는 육류 거리(meat distrcit),의류 거리(garment district) 등과 같은 뉴욕 전통의 상점가 중 하나다. 그러나 다른 곳들이 이름만 남아 있는 것과 달리 과거나 지금이나 번창하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익스체인지(exchange)'라고 불리는 다이아몬드 판매점 집합소에 들어서자 다이아몬드를 사러 온 사람들과 관광객이 뒤섞여 발디딜 틈이 없다. 이 거리에는 이런 익스체인지가 25개 있다. 에스메랄다 상점의 알렉산더 가브릴로프 사장은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이아몬드 거리가 예전보다 더 붐빈다"고 전했다.

다이아몬드 거리에서는 다이아몬드만 사고파는 게 아니다. 금 거래도 활발하다. 금 거래상인 디미트리 네진스키는 "최근 몇 주간 매출이 평소보다 40%나 증가했다"며 "오랫동안 가지고만 있던 귀금속을 현금화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이아몬드 거리로 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들에게 현물 거래가격의 99%를 주고 금을 사 1%만 수익으로 남기지만 하루에 10만달러 넘게 거래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3대째 다이아몬드를 팔아온 사람들

이곳에 본격적으로 다이아몬드 거리가 형성된 건 1940년대부터다. 독일 나치가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점령하자 그곳에서 다이아몬드 사업을 하던 유대인들이 나치를 피해 뉴욕으로 건너와 상권을 형성했다. 제프 레빈 피렌체주얼스 사장은 "1936년에 장인이 시작한 사업을 1976년에 물려받았다"며 "함께 일하는 딸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다이아몬드 거래를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싶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곳에서 다이아몬드 딜러 사업을 하고 있다는 스티븐 그로워 골드아트18KT 대표는 "한번 발을 들여놓았다가도 믿을 수 없다는 평판을 받으면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다"며 "이 거리의 사람들은 신용을 목숨처럼 여기고 그래서 행동이나 말이 비밀스럽고 조심스럽다"고 귀띔했다.

이 거리의 강점은 수직계열화가 이뤄져 있고 공정마다 장인들이 즐비하다는 것.대부분의 소매상은 1층에 있고 2층에는 커팅(절삭) 폴리싱(연마) 등 가공 업체들이 위치해 있다. 거리 곳곳에 산재해 있는 디자이너들의 의뢰에 따라 보석을 제작해 상점으로 내려보낸다.

◆뉴욕 경제에 42억달러 부가가치

거래상들의 조용한 습성 때문에 금융산업과 패션산업의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다이아몬드 거리가 뉴욕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금융과 패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다이아몬드거리 사업개선위원회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다이아몬드 거리가 종업원 봉급,세금 등으로 뉴욕주에 가져다주는 부가가치는 42억달러(4조4600억원)에 달한다. 원재료 구매,상점 임대 등 간접적인 경제효과까지 포함하면 241억8300만달러(25조6800억원)에 이른다. 이 조그만 거리에 제조업체,도매업체,소매업체 등 관련 업체만 4136개에 달하며 이 업체들이 직간접적으로 3만2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뉴욕주의 1위 수출품목도 다이아몬드다. 지난해 91억1700만달러(9조680억원)어치를 수출했다. 뉴욕주 하원의원(민주당)인 캐롤린 말로니는 "다이아몬드 거리는 뉴욕 경제에 왕관의 보석(crown jewels)"이라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