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굶주린 변호사 vs 굶주린 사자

에이브러햄 링컨과 추사(秋史) 김정희는 동(同)시대인이다. 둘의 얼굴을 보여주며 이 얘기를 꺼내면 대개 의외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미국 16대 대통령과 19세기 조선의 선비가 공통점을 많이 가져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그래도 같은 시대라기엔 너무 다른 모습이다. 양복에 신사 머리의 사진 속 링컨은 일단 현대풍이다. 갓과 도포 속 추사의 초상화는 그 자체로 그의 시대를 함축한다. 민주주의에 앞장 섰던 링컨이 현대의 시작선에 있는 반면,추사는 아무래도 중세의 뒤쪽이다.

직업에선 더 큰 차이가 보인다. 한쪽이 관료출신의 학자 · 문인인 반면 한쪽은 정계 입문에 앞서 오랜 변호사 활동을 했다. 링컨의 흑백사진은 근대성,합리성,전문성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는 법치와 공화정을 발전시킨 현대적인 변호사였다. 임금 아래 원님재판이 일상이었던 시대,추사 같은 지식인도 있었지만 150년 전 이 땅에는 변호사라는 말조차 없었다.

링컨에게서 변호사의 고전적 이미지를 본다. 그 이미지에는 '현대'와 '서구'가 스며있다. 성숙한 산업사회로 이행되면서 냉혈한,이기심,거만한 엘리트라는 그림자 이미지도 커져가지만 변호사란 직업 자체는 현대와 법치의 산물임이 분명하다. 뒤집어 보면 변호사들은 산업화도 촉진했고 현대를 현대답게 만드는 데 적잖게 기여했다. 링컨과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그랬다. 법과 계약,책임과 권한,자연인과 법인,정부와 기업,시민과 민주주의….이 모두가 변호사를 떼어놓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현대 사회의 기둥들이다.

다른 어떤 직종보다 공공부문과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권력으로 몰려간 집단도 변호사다. 지금 미국 의회 선량 중 절반이 변호사란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국회에선 변호사 출신이 20% 선이지만 변호사의 활동반경은 커져간다.

법을 통한 사회정의를 외치던 이 땅의 청춘들이 율사를 지망했던 시절은 오래되지 않았다. 그때는 '시국현장'이면 빠지지 않는 외골수 변호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성숙해진 첨단 산업사회,지금의 변호사는 많이 변했다. 사법연수원 졸업생 중 상위권은 억대 연봉을 받으며 로펌으로 직행한다. 국제,특허,정보기술(IT)로 특화해가는 새내기 법률전문가도 적지 않다. 지사(志士)보다는 전문기능인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와중에 '백수' 변호사도 늘어난다.

근대성 대신 빈틈없는 계산이,합리성 대신 성공보수를 우선시하는 변호사를 점점 더 많이 보게 될지 모른다. 내년부터 국내에 매년 2500명의 변호사가 쏟아진다. 이 중 1500명은 사회맛도 봤을 로스쿨 첫 졸업생이다. 명함도 찍기 전 생존경쟁에 내몰릴 이들에게 '지사 정신' 같은 거대담론은 신기루 같은 주문일지 모른다. 쓰나미처럼 밀려들 신출내기들을 맞을 변호사업계의 고충도 일면 이해된다. "굶주린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더 위험하다"는 말로 시름을 토로한 신영무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심정도 헤아릴 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 각계에 변호사를 반(半)강제 식으로 할당하겠다는 구상은 답이 아니다. 준법지원인 법제화는 틀렸다는 얘기다.

시대가 변했고 환경이 달라졌음을 변호사들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아직도 전문가들이라고 조금이라도 자부한다면,그렇게 대접받길 바란다면 이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봉사나 희생 같은 '고전적인 법 정신'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걸 바탕으로 공공부문의 더 낮은 쪽에 자신을 던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링컨의 길이 나타날 것이다. 변협도 작은 요령보다 큰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허원순 지식사회부장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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