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4명과 교수 1명의 잇단 자살로 위기상황을 맞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일부 교수들이 이 같은 사태는 예견됐던 일이라고 비판하며 뼈아픈 반성과 제도개선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28일 KAIST에 따르면 최근 발간된 교수협의회보를 통해 물리학과 이순칠 교수는 로봇 천재로 주목받다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을 언급하면서 "입학사정관 제도가 우리나라 교육현실의 내막을 너무 모르거나 혹은 외면하고 실행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대학의 교육과정은 그대로 두면서, 아니 우리 학교의 경우는 오히려 이 제도로 들어온 학생들이 적응하기 더 어렵게 바꾸면서 입학시켰으니 비록 자살까지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로봇 천재의 불행한 사건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와 사회 분위기가 가장 비슷한 일본도 이 제도를 시행하다가 상당히 축소했다고 하지 않는가"라며 "입학사정관 제도는 우리나라에서 당분간 성공할 수 없으며 조만간 사라질 제도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고분자학제전공 김상율 교수는 연구인건비 유용에 따른 검찰고발 방침에 고민하다 자살한 박모 교수를 떠올리면서 "교육, 연구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국내 대학들의 선도적 모델역할을 해왔던 KAIST에서 인건비 풀(Pool)제가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은 KAIST의 연구비 관리 등 체제에 부족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김 교수는 "실험실을 유지하며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적정 연구비의 확보와 더불어 연구비의 효율적인 집행이 중요한데 뒤떨어진 연구지원 시스템으로 인해 편법적인 연구비 집행에 유혹을 느끼게 된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전자및전자공학과 이수영 교수는 연차초과자 등록금 부과제도와 관련, "미래지향적 과학기술 인력은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양성되지 않는다"며 "규율보다는 자유로움을,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을, 독단보다는 조화를, 경쟁보다는 협력을 추구하는 교육만이 KAIST의 설립목표를 달성하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아무도 방법을 모르는 연구가 가치있는 연구이고 이는 반드시 계획된 시간에 달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수공업에 가까운 교육,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육, 학생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자연스럽게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생명화학공학과 김종득 교수는 "총장이 외부의 힘으로 영입되고 외부의 압력으로 사퇴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KAIST가 스스로 뼈아픈 반성을 하지 못하고 미봉책에 그친다면 희망이 없다"며 "어물쩍 넘어갈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스스로 혹은 사회적으로 더 큰 책임감과 도덕성을 갖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교내 혁신비상위원회는 서남표 총장이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학평의회 구성과 영어강의 폐지 등에 반대의견을 나타낸 데 대해 "자칫 혁신위의 구성목적을 훼손하고 정상적인 토론과 결론도출에 장애가 될 수 있는 데다 혁신위가 도출하는 결론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메일을 서 총장에게 보냈다.

(대전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cob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