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 활동에 기대..세력간 거래가능성 우려도
총장퇴진 압박-개혁실패 지적 여전..불안한 봉합

학생 4명과 교수 1명의 잇따른 자살로 촉발된 한국과학기술원(KAIST)사태가 서남표 총장의 개혁정책과 학교운영 시스템 등에 대한 개선방안을 도출할 교내 혁신비상위원회의 출범 등으로 외견상 진정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나 학내외의 개혁실패 지적과 총장 사퇴 압박이 여전해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혁신위 인선 마무리..내주 첫 회의 = 그동안 보직자들은 보직자대로, 교수협은 교수협대로, 학생들은 학생대로 각각의 개선책을 내놓았던 것과 달리 앞으로는 혁신위를 통해 이들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논의가 이뤄진다.

혁신위에는 교학, 대외, 연구 부총장을 비롯해 총장이 지명하는 5명이 참여한다.

평교수 대표 5명은 경종민 교수협의회장과 김정회 전 교수협의회장을 비롯해 한재흥, 박현욱, 임세영 교수로 정해졌다.

학생 대표로는 곽영출 학부총학생회장과 안상현 대학원총학생회장 등 3명이 활동하게 된다.

이들 13명은 이르면 오는 18일 첫 회의를 열 예정인데 혁신위에서는 등록금과 연구비 관리 문제, 교수 인사 문제, 학부생 및 대학원생 비상총회에서 의결된 재수강 제한 폐지, 전면 영어강의 방침 개정, 대학 정책결정 과정의 학생 참여 보장, 총장 선출시 학생 투표권 보장, 소통을 위한 위원회 구성, 연차초과제도 개선 등 요구사항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폭넓은 문제를 모두 다루기 때문에 혁신위가 3개월(필요시 1개월 연장) 동안 활동한 뒤 최종 개선방안을 도출할 때까지는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일단 학내 여론은 잠잠할 것으로 점쳐진다.

◇혁신위 결론에 대해서는 기대반 우려반 = 그러나 혁신위가 내놓을 결론에 대해서는 기대가 높기도 하지만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다.

기대를 거는 쪽은 이번 사태로 서 총장의 정책과 KAIST에 내재된 문제들, 학내 구성원들이 요구하는 내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이어서 혁신위가 비난을 자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획기적인 개선방안을 내놓지 않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반면 총장측 5명, 교수협측 5명이 팽팽하게 맞설 것이 뻔하고 결국 양쪽이 사안별로 '거래'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또 학생 입장에서는 교수들보다 적은 3명만 참여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견이 묵살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맹수연 대학원총학생회 홍보부장은 "결론을 도출하는 데 있어 교수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지 않겠느냐"며 "표싸움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는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여전한 서 총장 반대 여론 = 혁신위가 꾸려졌지만 서 총장의 정책을 '실패한 개혁'이라고 보는 시각과 서 총장에 대한 사퇴 압박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지난 13일 KAIST 사상 처음 열린 비상학생총회에서 '총장에 대한 개혁실패 인정 요구' 안건이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되기는 했지만 투표에 참여한 852명 가운데 찬성한 학생이 416명에 달했다.

반대 의견 317명보다 100명 가까이 많은 것이다.

앞서 11일 교수 비상총회에서는 220명 가량의 참석 교수 가운데 64명이 서 총장 사퇴를 요구하자는 의견을 냈다.

학교 밖에서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13일 서 총장에 대한 해임촉구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12일 교과위 전체회의에서는 임해규.정두언.조전혁 의원 등 한나라당 교과위원들이 한 목소리로 서 총장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와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역시 11일 서울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 총장이 최근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한 포털사이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 총장 사퇴 서명운동에는 지금까지 4천여명이 참여했다.

◇수습분위기 3개월 시한부설 대두 = 이 같은 상황이어서 학내에서 서 총장에 대한 비판여론이 혁신위 활동기간 잠잠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 뒤에까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혁신위가 구성원들이 수긍할 수 있는 획기적인 개선방안을 내놓고 서 총장이 교수협과의 약속대로 이를 모두 수용해 실행한다면 KAIST는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서 총장이 교수협의 혁신위 구성을 수용한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해 취한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성원은 "그동안 서 총장이 약속을 뒤집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며 "총장은 분명히 3개월 동안 혁신위 도출 결론을 반박할 논리를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한다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비판여론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확산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현재의 수습 분위기는 3개월 시한부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서 총장 변화 필요성 절감해야 = 이같이 부정적인 여론과 전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서 총장은 약속한 것처럼 혁신위의 결론을 적극 수용하고 따를 마음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학생과 교수들의 변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그가 그토록 '사랑한다'는 KAIST는 지금 처한 위기보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고 본인의 거취 또한 더욱 위태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위에 참여하는 교수와 학생들도 거래나 표대결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과학기술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KAIST가 발전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구성원 대부분이 수긍할 만한 획기적인 개선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앞으로 KAIST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cob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