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자 얽혀 구체화할 수록 갈등 첨예화 우려

지난주 총장실 앞 점거 사태를 빚었던 서울대 '법인화 갈등'은 학교와 노조 양측이 모두 대화를 통한 해결 입장을 밝히면서 다소 진정되는 모습이다.

학교측은 "진정성을 가지고 노조 측과 대화에 임하겠다"는 입장이고, 노조측도 학교측의 대화 의지를 믿는다며 점거나 출근 저지 투쟁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곧 '서울대 법인화' 이행을 놓고 학교와 노조 측의 대화가 이뤄질 전망이지만 워낙 이해당사자들이 많고 입장도 엇갈려 타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 서울대 법인화란 = 서울대 법인화는 현재 국가기관인 '국립서울대학교'를 독자 법인인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서울대는 건물 개·보수 작업을 하거나 전산시스템을 보완하려고 해도 조달청을 통해 발주 공고를 내야 하는 등 다른 정부기관과 동일하게 엄격한 행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교수 급여도 법령인 공무원보수규정이 정한 호봉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세계적 수준의 교수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법인화는 이같은 행정절차와 규정을 유연화해 행정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극복하자는 논의로 시작됐다.

일본 도쿄대가 2004년 법인으로 전환한 것도 서울대 법인화 추진을 가속화한 계기가 됐으며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국립대를 법인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견지해왔다.

법인화를 통해 자율적으로 인사·행정 체제를 개편하고 수익사업과 기금 모금을 활성화해 교육·연구의 질적 향상을 이뤄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 서울대의 목표다.

◇ 추진 경과 = 서울대 법인화는 지난해 12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법안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2012년 1월부터 발효되며 서울대는 이 시점부터 정부로부터 독립된 조직으로 설립등기 절차를 거쳐 법인으로 전환된다.

교과부는 지난달 21일 서울대 법인화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고 서울대는 이어 1일 법인 설립준비위원회(설립준비위) 위원 명단을 확정해 발표했다.

설립준비위는 정관 작성과 법인 이사와 감사를 선임하는 등 법인화 이후 서울대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정하게 된다.

하지만 '국립대 법인화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당이 법안을 단독 처리하면서 갈등 불씨가 잠재해왔다.

◇ '법인화 갈등' 혼재 양상 = 현재 서울대 법인화를 둘러싼 갈등에는 법인화 자체를 반대하는 세력과 현재 법인화 추진과정의 미흡함을 지적하며 조건부로 반대하는 이해관계자의 주장이 혼재하고 있다.

서울대 일부 교수와 총학생회, 노조는 '서울대 법인화 반대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구성해 ▲기초학문 고사 ▲등록금 인상 ▲시장논리의 대학 지배 등 고등교육의 공공성 훼손을 우려하며 법인화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

민주당도 국회에 서울대 법인화법 폐기법안을 상정해 놓은 상태다.

공대위에 참여하는 서울대 공무원노조와 대학노조 서울대지부는 법인화 자체를 반대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지만 법인화 절차가 현실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교직원의 신분과 복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에는 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본부 점거 사태는 정관 작성을 맡은 이사회에 교직원의 참여가 배제된 것에서 촉발됐다.

서울대 교수협의회는 법인화 자체는 찬성하지만 법인화법과 시행령에서 외부 감사의 역할과 국유재산 양도에 관한 규정을 모호하게 적시한 것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법인화가 원만히 추진되더라도 3조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국유재산 양도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서울대 측의 줄다리기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 갈등 이제부터 수면 위로 = 숱한 난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서울대 법인화 갈등이 물 위로 떠오르지 않은 것은 쟁점이 교육 공공성 약화 등 추상적인 데 그쳤기 때문이다.

법인화 이후의 구체적인 모습이 정관에 유예되다 보니 현실적인 대립각이 세워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본부가 설립준비위 위원 명단을 확정하고 전격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기로 하면서 행정관 점거 사태가 일어난 것에서 보듯, 법인화 진행이 구체화 될수록 갈등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연옥 대학노조 서울대지부장은 "현실적으로 법인화법이 통과한 상황에서 노조원의 신분보장과 복지문제를 정할 설립준비위 구성에 교직원이 배제된 상황을 수수방관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와 노조 양측이 모두 대화를 통한 해결 입장을 밝혔지만 합의가 원만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물리적 충돌이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서울대 법인화를 전례로 삼아 다른 국립대에서도 법인화를 둘러싼 학내 갈등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대위 위원장인 최갑수 서양사학과 교수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서울대 법인화에 관한 논의가 전무했는데 앞으로 문제들이 터져 나오리란 것은 자명하다"며 "내년 총선·대선 국면에 법인화를 이슈화할 수 있도록 반대 목소리를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남익현 서울대 기획처장은 "교수와 학생, 정부는 물론 넓게는 국민도 서울대 법인화의 이해당사자로 볼 수 있다"며 "진정성을 갖고 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직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법인화를 추진해가면서 다양한 그룹의 의견을 듣고 고려해 나갈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