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검사 이성윤)는 해외로 1000억원 가까운 재산을 빼돌리고 430억여원의 세금을 포탈한 봉제완구 제조업체 에드벤트엔터프라이즈의 박모 회장(62)과 벤엔피 대표 강모씨(50)를 재산 국외 도피 등 혐의로 24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회장 등은 2000년부터 2008년 사이에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홍콩 현지법인을 통해 미국 유명 완구업체인 T사에 막대한 물량을 납품하면서 총 1136억4000만원의 소득신고를 누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를 통해 총 437억원의 세금을 포탈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들은 해외 현지법인에서 거둬들인 돈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에 세운 4개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 로 옮기고,그중 일부를 다시 스위스 비밀계좌로 옮기는 치밀한 금융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회장 등은 국내로 들여와야 하는 재산 947억여원을 국외에 은닉 또는 처분한 혐의도 받고 있다.

◆조세피난처로 자본 유출 급증

한국과 외환거래가 많은 조세피난처 국가는 영국(32%) 싱가포르(29%) 홍콩(16%) 순이다. 이들 국가는 자본에 낮은 세율로 과세하고 특정 사업 활동에 대해서는 조세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영국과 싱가포르 등 조세피난처와의 무역 비중은 최근 10년간 감소했는데도 외환거래 비중은 오히려 증가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영국과의 수출입 비중은 전체의 6%(88억달러)에 불과하지만 외환거래 비중은 32%(828억달러)에 달한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가 본격화한 2009년 대규모 자금이 조세피난처로 흘러들어갔다. 2009년 총 해외 직접투자는 전년 대비 19% 감소했지만 조세피난처 투자는 30.4% 증가했다.

◆상속 · 증여세 부담이 자본 유출 부추겨

조세피난처와의 외환거래가 급증한 이유는 수입 실적 대비 수출 대금 지급액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세피난처에서 수입 신고한 금액은 428억달러였지만 수입대금 지급액은 1317억달러로 3배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높은 상속 · 증여세율을 자본 유출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상속세를 납부할 돈을 마련하기 어려워 상속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이 과정에서 재산 유출 등 편법을 쓰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대주주가 주식을 물려줄 때는 소유주식 할증 평가가 적용돼 특히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줄 때 상속세가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많다. 현재 최대주주의 지분 비율이 50% 이상이면 30%(중소기업은 10%),50% 미만이면 20%(중소기업은 10%)로 주식가액을 할증 평가해 상속세를 부과한다. 지분 비율이 50%인 최대주주가 재산을 물려준다고 가정하면 최대 30%의 할증 평가가 이뤄져 실질적으로 65%의 최고세율이 적용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재산세 과표 적용률이 매년 상향 조정되면서 부동산 보유자들의 세금 부담이 높아진 것도 조세피난처로의 자본 유출이 늘어난 원인으로 분석된다.

◆당국,역외 탈세와의 전면전 선포

정부는 상속 · 증여세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기보다는 모니터링 강화와 단속을 통해 불법 외환거래를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관세청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오는 5월부터 3개월 동안 정밀 분석을 실시해 불법 외환 유출 여부를 가리기로 했다.

국세청도 올해 '역외 탈세와 전면전'을 벌여 1조원 이상 역외 탈세를 찾아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세청은 이를 위해 '역외탈세담당관'을 비롯해 역외탈세 전담기구를 신설했다. 본청에 설치된 이 기구는 국내 기업과 거주자의 해외 은닉 · 탈루 소득 동향 수집 및 분석을 집중 수행하게 된다.

해외에서의 현장 정보수집 및 조사도 강화된다. 국세청은 역외탈세 경유지 및 목적지로 빈번히 활용되고 있는 외국 지역에 정보수집요원을 파견하거나 현지에서 한국계 기업상황에 정통한 정보원을 고용해 탈세정보를 수집 · 확보할 계획이다. 홍콩 등 국제금융 중심지 4곳과 중국 상하이 등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한 지역 6곳,해외 한인 밀집지역 5곳 등 최대 15곳이 대상이다. 국세청은 이를 위해 올해 58억원의 '특별예산'도 확보했다.

국세청은 또 기존에 미국 워싱턴,프랑스 파리 등 전세계 6곳에 파견된 해외주재 세무관도 늘려 올해 중국 상하이,베트남 하노이 등 2곳에 추가로 파견한다. 오는 7월부터 실시되는 '해외금융계좌신고제도'도 역외탈세 적발에 상당한 지원세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공조를 활성화해 외국과 탈세정보 교환은 물론 파견 및 동시조사도 추진키로 했다.

강동균/임도원 기자 kdg@hankyung.com


◆ 조세피난처

Tax Haven.법인세와 개인소득세 등을 부과하지 않거나 아주 낮은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나 지역을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9년 4월 국제조세 기준의 이행 정도에 따라 조세피난처를 '완전 이행 국가(화이트 리스트)''불완전 이행 국가(그레이 리스트)''불이행 국가(블랙 리스트)' 등 세 가지로 분류했다. 블랙 리스트 국가는 코스타리카 말레이시아 필리핀 우루과이 등 4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