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알몸이다. 칠순을 넘긴 시골 노인부터 이웃집 부부,중소기업 사장,문신가게 주인,백화점 직원까지….적나라하게 노출된 성기도 그렇지만 다리를 벌린 채 의자에 앉은 사람들의 자세가 도발적이다. 누드화이지만 관능적인 미감은 간데 없고 곡선과 울룩불룩한 질감이 두드러진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서양화가 안창홍 씨(57)의 개인전에서는 이런 알몸들을 만날 수 있다. 안씨는 절망과 위선,고독과 상처 등 내면의 감춰진 진실을 누드화법으로 형상화하는 작가다. 그는 미화나 과장을 배제하고 정직하게 그려낸 누드화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는 국내 화단에서 몇 안 되는 고졸 출신 화가다. 가난해서 학비를 걱정할 처지이긴 했지만 대학에 못 갔다기보다 안 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프랑스 카뉴 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그는 2004년 부산비엔날레에서 빛 바랜 사진 속의 인물 형상을 지워버린 '49인의 명상'으로 주목받았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형 누드화 작업에 뛰어들었다.

'불편한 진실'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3년간 작업한 3~4m 크기의 누드화 '베드 카우치' 시리즈를 비롯해 콩테(소묘용 미술재료)나 먹으로 작업한 드로잉,스케치 등 40여점을 걸었다. 그의 누드화는 사회가 감추거나 외면하던 부분들을 들춰낸다.

그는 "인간의 몸은 삶의 다양한 궤적은 물론 개인을 넘어 사회의 모습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소통의 거울"이라며 "현실의 부조리를 묘사하는 데 보통 사람들의 육체만한 소재도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영화배우나 직업 모델에게선 아무래도 진솔한 삶의 흔적을 잡아내기 어렵다. 따라서 그는 늘 마주치는 주변 사람들을 섭외해 사진을 찍고,드로잉한 다음 작업실에서 그린다. 어떤 모델은 설득하는데 10년씩 걸리기도 했다. 가공되지 않은 육체를 통해 진실을 잡아내고,허위 의식을 고발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에로틱한 누드 그림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누드는 일상의 삶이 각인된 건강한 '몸' 그 자체다. 물감자국으로 얼룩진 작업실을 배경으로 도발적인 포즈를 취한 직장 여성에서는 소시민적 삶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된 당당함,평생 육체노동으로 살아온 농부의 알몸에서는 회색빛 절망감,정면을 응시하는 중소기업 사장의 몸에서는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일상 속에서는 타성에 젖은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익숙한 인상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그 사람의 살갗과 뼛속 깊은 곳,동공의 그늘 깊은 곳에 가려져 있는 영혼의 향기는 거의 맡지 못하고 산다. 그 깊은 향기를 잡아내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는 "옛날에는 초상화를 누구 누구의 전신(傳神)이라고 했는데 그게 영혼을 그린다는 뜻"이라며 "몸에서 표출되는 느낌 중에서 나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영혼을 잡아낸다"고 말했다.

그는 "화가의 눈은 고단한 육체를 통해서도 몸의 근원적인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고,창녀의 지친 몸을 통해서도 인생의 격랑을 헤쳐가는 강인함과 그 속의 신성한 힘을 그려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내달 6일까지.관람료 3000원.(02)3217-1093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