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전자검사 시장 점유율 60%대를 기록했던 바이오벤처기업 셀지노믹스는 기밀 누출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경쟁사 설립자 김모씨의 꼬임에 넘어간 셀지노믹스 부사장 최모씨의 주동으로 2009년 초 최씨와 직원 등 20명이 회사 거래처 목록 및 거래단가를 비롯 영업기밀을 도둑질해 빼돌렸기 때문이다. 최씨는 직원을 시켜 셀지노믹스의 유전자 검사장비 두 대를 야간에 훔치기도 했다. 회사가치 200여억원에 달했던 유망 벤처기업은 결국 같은 해 폐업하고 말았다.

셀지노믹스 사건처럼 업계의 판도가 뒤집히거나 기업의 명운이 좌우될 만큼 '결정적인' 산업기술과 기업비밀이 담긴 자료를 훔친 사람은 앞으로 최장 6년간 철창 신세를 지게 된다. 주모자의 경우 대부분 최소 징역 3년을 넘기는 실형이 선고되는 등 형량이 무거워진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절도범죄 양형기준안 중 '특별재산에 대한 절도' 유형에 기업의 핵심 기술이나 기밀 관련 절도를 가중처벌하는 안을 추가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양형위가 마련한 기준안에는 특별재산(사회적 · 문화적 · 경제적 가치가 높은 재산)에 대한 절도 제2유형에 '유출될 경우 해당 기업의 흥망 또는 해당 분야의 판도가 바뀔 정도의 첨단기술 등 매우 중요한 산업기술 또는 기업비밀 관련 자료의 절도'가 포함돼 있다. 이 유형에 해당되는 절도죄를 저지른 자는 앞으로 최소 1년6개월에서 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된다. 특히 핵심기술이나 기밀 관련 자료를 훔쳐오라고 지시한 주모자나 과거 같은 범죄로 실형이 선고된 경우에는 징역 3~6년 양형 대상이 돼 곧바로 실형을 살게 된다. 3년을 초과하는 징역형에는 집행유예가 선고되지 않기 때문이다.

양형위 관계자는 "유출 결과 해당 기업이 망하거나 업계 순위가 뒤바뀔 정도로 중대한 기술 · 기밀 관련 자료 절도는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양형위는 해당 기술 · 기밀의 가치를 '중요한'과 '매우 중요한'으로 나눴다. '중요한 산업기술 또는 기업비밀 관련 자료의 절도'는 제1유형에 해당돼 징역 1~4년형 양형 대상이지만,'매우 중요한 관련 자료 절도'는 제1유형보다 가중처벌되는 제2유형으로 구분했다.

지금까지 기업의 핵심 기술 · 기밀이 담긴 서류 사진 컴퓨터파일 도면 기기 등을 훔치거나 이를 지시한 경우에는 배임,'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절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현행법상 업무상 배임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은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져 새 양형보다 약했다. 그러나 새 양형위 기준안에 따라 절도 혐의를 적용하면 최소 1년6개월~3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양형위 관계자는 "몇 년 이하 형은 1개월도 선고될 수 있지만 몇 년 이상의 최소 형량을 정하면 더 엄하게 처벌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기준안으로 형량의 하한선을 제시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셀지노믹스 사건의 경우 주동자인 김씨와 최씨는 절도 혐의로 새 양형기준안을 적용하면 절도와 배임 등이 추가돼 양형 계산상 최소 징역 3년형 이상 선고가 가능해진다.

양형위는 내달 기준안을 확정해 관보에 게재할 예정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