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유씨 허풍일수도…檢 "로비수첩 없다"
`타깃 더 있다'…예단하긴 아직 이른 시점

대규모 권력형 비리인가 아니면 지역 경찰관을 등에 업은 함바 브로커의 농간이냐.
강희락 전 경찰청장,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 등 전직 경찰 수뇌부가 검찰 조사를 받은 데다 공직자들의 이름이 계속 나오고 있어 '함바 비리'를 둘러싼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관심이 쏠린다.

검찰의 '함바 비리' 수사가 본격화한 이후 지금까지 실명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정·관계 인사들만 십수명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의원과 여권 대선주자도 연루됐다거나 함바 운영권 브로커 유상봉(65.구속기소)씨에게 강 전 경찰청장을 소개해준 거물급 인사가 있다는 설, 호남 출신인 유씨를 업계의 큰손으로 키워준 것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때 실세라는 등의 얘기가 퍼지면서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모두 사실이라면 '함바 비리'는 업계에 뒤늦게 뛰어든 유씨가 정권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정ㆍ관계 고위 인사들을 전방위로 포섭해 전국의 건설현장 식당 운영권을 떡 주무르듯 한 '권력형 비리' 사건이 된다.

유씨가 함바 운영권에 손을 대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 유씨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는 한 함바 사장은 "현재까지 밝혀진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로비 자금이 최소 수십억원이고 건국 이래 최대의 비리 사건이 될 것"이라고까지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놓고 보면 유씨가 함바 운영권을 따내려고 전국 곳곳에서 인맥 쌓기를 시도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경찰이 자진신고를 받은 결과 41명이나 되는 총경 이상 간부가 유씨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고, 허남식 부산시장과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 등 각계 인사 상당수가 유씨와 최소한 안면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인물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폭로전' 양상이 이어지면서 의혹의 상당 부분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조심스레 나온다.

사실상 고위층과 인맥에 따라 운영권이 결정되는 함바업계의 특성상 유씨가 고위층과 일면식만 갖고 막역한 사이인 양 허풍을 떨었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 각지의 경찰서장을 비롯해 유씨와 관계를 의심받는 인사들은 한결같이 "누군가의 소개로 한두 번 만난 적이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유씨의 로비 행각을 둘러싼 의혹이 대부분 그를 통해 함바 운영권을 따려고 돈을 줬다가 날린 피해자나 유씨와 이들을 연결해준 2차 브로커, 일선 함바 운영업자 등의 입에서 나오는 점으로 미뤄 이들이 유씨의 허풍이나 업계의 소문을 그럴 듯하게 옮겼을 수도 있다.

유씨와 만난 사실을 실토한 인사들이 대부분 유씨의 사업이 점차 기울기 시작한 때인 3~4년 전에 봤다고 말하는 점도 이러한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유회장'으로 불리며 업계를 장악하던 유씨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축소된 사업을 만회하려고 경찰뿐 아니라 정ㆍ관계에도 문어발식 로비를 시도하며 이들의 이름을 팔았을 수 있다.

검찰은 의혹을 입증할 만한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두 전직 치안총감 등을 제외하면 '카더라' 수준의 의혹만 갖고 수사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항간에는 현직 광역지방자치단체장과 정치인 등 로비 대상자 1천여명이 적힌 '로비수첩'이 있다는 풍문도 떠돌지만 검찰 관계자는 "작성된 지 10년 정도 돼 보이는 전화번호부가 있을 뿐인데 수사에는 도움이 안되는 자료"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의 타깃이 더 있다'는 얘기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아직은 수사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른 시점이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te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