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실패 후 돌아선 이들에 서운한 감정 작용한 듯

'함바집 비리' 사건의 중심인물인 브로커 유모(65·구속기소)씨가 자신이 금품을 건넸다는 고위직 명단을 줄줄이 진술함에 따라 유씨의 입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유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경찰 조직의 전직 양대 수장을 비롯해 여야 국회의원, 현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 차관급 기관장, 공기업 사장, 광역자치단체장, 대형 건설사 대표의 이름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함바집을 둘러싼 건설업계의 관행적 비리를 들춰내는 데 초점이 모이는 것 같았던 이 사건 수사는 지난달 24일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이 출국금지 되면서 권력형 비리를 캐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이처럼 불과 한 달여 만에 수사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것은 검찰 조사에서 유씨가 '자신과 얽힌' 인사가 누군지 비교적 순순히 밝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씨는 2차 브로커 수십 명을 동원해 전국에 걸쳐 문어발식으로 함바집 운영권 알선업을 해오면서 크고 작은 뒤탈을 막으려고 강 전 청장 등 경찰 고위직과의 친분관계를 이용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자신의 뒤를 봐줄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강 전 청장이 4천만원을 주고 해외 도피를 권유하는 등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자 자신이 관리해온 경찰 고위직 인사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품게 된 듯하다.

여기에 2008년 이후 건설 경기가 나빠지면서 업자들에게 약속한 함바집 운영권을 따오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줄소송에 시달렸지만 정작 자신이 관리해온 인사들에게서 그다지 도움을 받지 못한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유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거론된 인사들은 '한번 만났을 뿐 친분 관계는 없다'는 식의 해명으로 일관하며 거리를 뒀다.

지난해 11월 구속되고 나서 수감 생활로 당뇨와 고혈압 등 지병이 악화한 것도 유씨가 입을 열게 된 하나의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검찰 수사에 협조해 보석으로 풀려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보석 신청이 기각되면서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몇 가지 요인이 겹치면서 검찰은 유씨의 입을 통해 비교적 쉽게 연루 인사의 명단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정관계 인사는 브로커 유씨가 과연 어느 정도 수준에서 진술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그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여환섭)는 이번 주초 강 전 청장과 이 전 청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고위 공직자 연루 의혹에 대한 사실확인 작업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ah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