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된 노후…흔들리는 한국] (4ㆍ끝) 濠 국민 71% 가입한 퇴직연금…'강제 가입 + 파격 稅혜택'이 비결
"슈퍼애뉴에이션은 오지(Aussie · 호주인을 친근하게 일컫는 말) 노후대비 수단의 전부입니다. "

호주 시드니의 금융중심가 마틴 플레이스.시드니의 월스트리트 격인 이 곳에서 만난 금융업 종사자 재키 설리반씨(39)는 노후 대비를 어떻게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월 급여의 11%를 떼 적립하고 있다"며 "예상대로라면 연 6~7%의 목표수익률로 운용해 65세부터 연 2만2600호주달러(AUD · 약 2510만원) 정도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격인 노령연금을 더할 경우 연간 총 4만3000AUD(4780만원)의 연금 수입이 들어오게 된다. 설리반씨에겐 퇴직연금인 슈퍼애뉴에이션이 노후의 든든한 버팀목인 셈이다.

◆슈퍼애뉴에이션 하나면 충분

[준비 안된 노후…흔들리는 한국] (4ㆍ끝) 濠 국민 71% 가입한 퇴직연금…'강제 가입 + 파격 稅혜택'이 비결
호주의 노후 준비를 얘기할 때 슈퍼애뉴에이션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근로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자영업자들은 자율적으로 가입할 수 있다. 15세 이상 호주 국민 71%가 가입한 전 국민의 노후대비 수단이다. 호주건전성감독청(APRA)에 따르면 슈퍼애뉴에이션의 지난 6월 말 기준 순자산은 1조2270억AUD(1358조원)에 달한다. 이제 겨우 20조원을 넘긴 한국 퇴직연금의 68배다.

근로자는 월 급여의 9%를 의무적으로 적립하고 여유가 있으면 더 넣을 수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는 자발적 적립률(의무적립률 9% 이외 추가 적립분)이 평균 5%를 넘기도 했으나 2008년에는 0%대까지 줄었다 작년부터 회복되는 추세다. 인도네시아에서 이민 온 힌다토 세티오씨(54)는 "충분하진 않지만 노후를 생각할 때 슈퍼애뉴에이션은 큰 위안이 된다"며 "1%를 추가로 넣고 있다"고 말했다.

슈퍼애뉴에이션의 중도 인출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사망,이민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55세가 되기 전 적립금이나 운용수익을 빼낼 수 없다. 이는 호주의 장기분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고 자산운용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해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슈퍼애뉴에이션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1992년 도입 초기 3%였던 의무적립률이 2002년 9%로 높아졌다. 최근에는 12%로 상향 조정하는 법안을 논의 중이다. 존 다우 호주건전성감독청(APRA) 퇴직연금국장은 "사회보장제도인 노령연금에다 슈퍼애뉴에이션,기타 소득을 합산한 적정 노후자금을 산정해 본 결과 적립률을 더 올려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 슈퍼애뉴에이션의 목표는 은퇴 전 소득의 3분의 2를 대체하는 데 있다.

◆강제적 사적 연금이 성공 요인

슈퍼애뉴에이션은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퇴직연금 모델로 꼽힌다. 짧은 기간에 급속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성공요인은 강제적인 사적연금으로 설계됐다는 게 호주 감독당국이나 금융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우 국장은 "전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제적 연금이어서 함부로 꺼내 쓸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마틴 코디나 호주 투자금융협회(IFSA) 정책이사도 "사회 노령화에 따른 정부의 부담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라며 "강제적이어서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제적이라고 해 무조건 가입만 하도록 한 것은 아니었다.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세제 혜택을 제공했다. 개인당 5만AUD까진 적립금에 대한 세율을 평균 소득세(30%)의 절반인 15%로 낮췄다. 가입자가 60세가 넘어 매월 연금식으로 돈을 받아갈 경우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출범 후 지난 18년간 투자성과가 우수했다는 점도 국민들의 신뢰를 키운 요인이다. 2000년(6월 말 결산)부터 2009년까지 지난 10년간 연 평균 수익률은 3.8%였다. 이는 2007년(-8.1%)과 금융위기가 전 세계 증시를 강타한 2008년(-11.7%)까지 합한 것이다. 손실이 난 두 해를 빼면 연 평균 7.2%에 이른다. 지난해(2009년 7월~2010년 6월)는 증시 회복에 힘입어 9.3%의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슈퍼애뉴에이션의 성공을 교훈삼아 한국 퇴직연금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할 것을 주문했다.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선진국의 절반 수준인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노후 준비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한국도 퇴직연금의 부분 강제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은퇴를 앞둔 고령층일수록 소득공제 혜택을 확대해 자발적으로 적립을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드니(호주)=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