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자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30~40대는 젊기 때문에 재기하기도 상대적으로 쉽다. 구할 수 있는 직장의 범위도 넓다. 그러나 50~60대는 그렇지 않다. 은퇴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약 90만명에 달하는 신용회복자 가운데 취업이 가장 어려운 계층이 '50대 이상'이다. 신용회복기관인 자산관리공사(캠코)와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전체 신용회복자 중 50~60대는 약 30%를 차지한다. 김학중 캠코 취업지원팀장은 "50~60대는 앞으로 일할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은퇴하기에도 이른 시기"라며 "취업해서 새로 배워가며 일하기에는 아무래도 불리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특화 분야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격증 · 경력으로 승부

서울 이문동에 사는 김영혁씨(55)에게 2001년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9 · 11테러는 악몽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인의 말을 좇아 주식과 옵션 등에 투자했던 김씨는 9 · 11테러 직후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주가 때문에 6개월 만에 10억원을 날렸다. 무리한 욕심으로 빚을 내 투자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 빚에 눌려 사는 고된 인생이 시작됐다. 캠코에 신용 회복 신청도 무려 세 번이나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에게는 자신만의 무기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따놓았던 자격증들이었다. 방화관리,위험물안전관리,가스보일러조종 등 빌딩 설비 관련 자격증만 5개를 갖고 있다. 젊은 시절 기계실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가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 캠코 취업관리센터에 구직 신청을 등록한 뒤 약 2주 만에 빌딩관리 전문업체인 성원퍼실리티㈜로부터 연락이 왔다. 면접을 거쳐 채용이 확정됐다.

김씨는 "화재,가스 폭발 등 대형 사고의 위험성 때문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지만 이 나이에 다시 관련 직종에서 일할 수 있게 돼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열심히 일해 캠코에 남은 빚을 꼭 다 갚겠다"고 다짐했다.

◆취업, 포기하지 말아야

충북 청원군에 거주하는 김모씨(56)는 시골 출신으로 1998년 외환위기 전만 해도 음식점 운영으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경기가 급전직하하면서 매출이 크게 줄었다. 이후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김씨는 신용카드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연체로 이어졌다.

2007년부터는 아예 음식점을 접고 취업을 하려고 했지만 나이가 적지 않은 데다 기술이나 지식이 없어 취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지만 빚을 갚기는커녕 생활비 마련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5월 캠코에 신용 회복을 신청하는 동시에 구직 등록을 했다. 원금만 약 1300만원에 달하던 빚을 30% 감면받았다. 8년간 매월 7만5000원씩만 내면 상환이 끝난다.

구직 등록 후 약 3주 만에 금속제조 관련 중소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제품을 배송하고 납품하는 일이었다.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김씨는 "이 나이에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일자리를 구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자존심은 일단 접어두고

경기도 부천시에 살고 있는 민모씨(62)는 10여년간 경영해온 회사(잡화 제조 및 수출업)가 2002년 도산하면서 빚더미에 앉았다. 총 채무액은 약 7000만원.주변에서 파산 면책을 신청하라는 권유도 받았다.

그러나 파산자란 오명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올해 초 신복위를 찾아가 신용 회복을 신청했다. 다행히 총 채무액의 80%가 감면돼 빚이 1200여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상환 기간도 95개월로 늘어났다.

문제는 직장이었다. 신복위 취업지원센터에 구직 신청을 등록한 뒤 얼마 안돼 한 중소기업에서 경비직 제안이 들어왔다. 야간 근무로 오후 5시에 출근하고 오전 6시에 퇴근하는 고된 일이었다. 그는 수년 전만 해도 어엿한 사장님이었지만 재기를 하려면 '찬밥 더운밥'을 가려서는 안 된다며 각오를 다졌다.

민씨는 "단순한 일이지만 작은 실수라도 없도록 최선을 다해 근무하고 있다"며 "동료 직원들도 친절해서 사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