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농가 부채는 작년 말 31조4000억원이었다. 처음부터 농가 부채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1990년 8조원에 그쳤던 농가부채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이 타결된 이후 정부가 농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명목으로 농기계 구입비,시설비 등에 적극적으로 대출해 주면서 급증했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빚을 갚지 못하는 농민들이 고속도로를 점거하며 농가부채 탕감을 요구했고 정부는 부채 상환기간을 연장했다. 한 · 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될 때 농가부채가 또 늘었다. 처음에는 부담이 크지 않을 것 같았던 농가부채는 이런 식으로 급격히 불어났다.

#2.지난 1월 학자금 상환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 1학기 10만9426명이 처음으로 4240억원의 '든든학자금'을 받았다. 연간 등록금이 1000만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학자금 지원은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금리 대출을 받아 학비를 냈다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학생들이 줄어드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된다. 2학기 학자금 납부를 앞두고 대출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돈을 벌면 갚아라.'

지난 1학기부터 시작된 든든학자금 대출(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 ICL)은 정부가 일반 신용대출보다 다소 낮은 금리에 학생들에게 돈을 꿔 주고,취업해 일정 기준(4인가구 최저생계비) 이상 소득을 갖게 됐을 때 돈을 갚는 제도다.

치솟는 등록금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이 제도는 이명박 정부의 서민대책으로 나왔다. 균등한 교육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됐다. 기존의 일반학자금 대출은 4년간 1인당 대출한도가 4000만원이었으나 이 제도는 대출 한도가 없다. 상환기간이 닥치면 무조건 원리금을 갚도록 했던 과거 제도와 달리 소득이 생겨야 갚도록 했다.

대학 개강시기에 맞춰 촉박하게 대출이 시행된 탓에 지난 1학기 대출건수는 정부가 예상했던 70만건보다 훨씬 적었다. 이인식 한국장학재단 학자금대출여신부장은 "ICL 대출 자격요건이 되는 신입생은 기존에 시행되던 일반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제한하기 때문에 ICL 대출건수가 많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제2의 농가부채'우려도

일부에서는 이 제도가 '제2의 농가부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갚을 능력이 없는 농민들에게까지 돈을 꿔 준 뒤 사회 문제가 되자 정치권의 압력에 밀려 정부가 농가부채를 떠안았다. ICL 대출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농가부채의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는 환경이다.

대출받기는 쉽지만 미래 부담이 작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ICL 대출의 지난 1학기 대출금리는 5.7%,오는 2학기는 5.2%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대출금리가 앞으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

상환 시작 전에는 단리가 적용되지만 상환 시작 시점부터는 복리가 적용돼 빚이 금세 불어나는 구조다. 금리 연 5.8%로 4년간 3200만원을 대출받은 학생이 취업 첫해 연봉 1900만원을 받는다면 25년간 9705만원을 갚아야 한다는 게 교육과학기술부의 시뮬레이션 결과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것도 부담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용시장이 회복되고 있으나 청년층 실업률은 6월 8.3%로 작년과 비슷하다. 실업 상태에선 대출을 갚을 의무가 없지만 이자는 계속 단리로 붙는다.

대출자는 불어나는 이자 부담을 져야 하고,정부는 '복리이자로 부담해야 하는 자금조달 비용'과 '단리이자로 받게 될 상환금'의 차액을 부담해야 한다.

교과부는 ICL 대출의 부실률을 10.8%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보다 부실률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고등교육 진학률이 80%를 넘고 결혼 · 출산 후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여성들이 많으며 자영업자는 소득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연섭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보고서에서 "상환기준 소득을 1500만원,상환율을 20%로 가정할 때 대졸 남성의 평균 상환기간은 13년,여성은 25년에 이를 것"이라며 "졸업 후 35년이 지난 뒤 채무 불이행률은 남성이 4%,여성이 46%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배우자 소득까지 국세청 등을 통해 파악해서 추징할 계획이므로 실제 불이행률은 이보다 낮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도덕적 해이 유발 가능성

학생들을 돕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한계에 다다른 부실 대학들의 구조조정을 늦출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영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학이 난립하면서 한계대학 · 부실대학들이 양산됐는데 이 제도로 학생들의 등록금 납부율이 높아져 구조조정 시기가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의 경영상태에 따라 ICL 대출조건을 다르게 적용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과부는 "이 문제에 관한 정책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자금 대출이 쉬워진 만큼 대학들이 등록금을 손쉽게 올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를 우려해 대학의 등록금 상승률을 3년 평균 물가상승률의 1.5배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을 법안에 넣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4년간 물가상승률의 1.5배씩 등록금을 올리면 등록금 누적 상승률이 물가 누적 상승률의 5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에 대해서까지 정부가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사회기여도가 낮은 학생들까지 학자금을 100% 대출해주면 불필요한 교육수요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육학과 교수는 "한국은 고등교육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ICL 대출은 다소 무리해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고 학업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대출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