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노령연금 수급 대상자를 80%까지 확대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거짓이었나. 어르신들의 기초생활을 위협하는 기초노령연금 대상 축소 추진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이 지난 13일 ‘보건복지부가 기초노령연금 수급 대상자를 40%까지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해 내놓은 논평이다. 노령연금의 대상과 지급액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처음부터 고령자 대상 연금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국민연금 제도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연금을 주는 기초연금 제도를 제안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꺼내든 것이 기초노령연금이다.

한나라당도 다를 게 없다. 철학과 원칙 없이 그때의 편리와 당파성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정치권의 행태는 기초노령연금 제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손바닥 뒤집은 민주당

국민연금법 개정안 논의가 한창이던 2006년.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옛 열린우리당)은 국민연금의 보완책 중 하나로 65세 이상에게 월 32만원을 지급하자는 한나라당의 기초연금 제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65세 이상 노인의 45%에게 월 8만원씩만 지급해도 연간 2조원이 들어가는데 그만큼의 재원 마련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여·야 줄다리기 끝에 관련 법은 절충안 형태로 노무현정부 집권 말기인 2007년 7월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이어 현 정부 들어 2008년 1월부터 이 제도가 시행됐다.
돈이 노인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하자 정치권의 생색 내기가 시작됐다.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기초노령연금이 지난 정부 때 민주당이 주도해서 만든 제도”라고 치켜세웠다.민주당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6 · 2지방선거 때 기초노령연금 지급 대상을 65세 이상 노인의 ‘70%’에서 ‘80%’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이후 민주당은 연금 지급 대상과 지급액을 확대하라고 줄곧 요구하고 있다.여당시절 재정 부담을 이유로 연금 지급 대상 확대에 난색을 표했던 4년 전과 비교하면 입장이 180도 바뀐 셈이다.

◆찬성했던 한나라당은 뒤늦게 반대

한나라당은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기초노령연금 수혜 대상 및 지급액 확대를 꺼리고 있다. 하지만 처음에 기초노령연금 도입을 강하게 주장했던 곳은 한나라당이었다. 2006년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혁하려 하자 한나라당은 ‘연금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며 기초노령연금 도입을 제안했다.

내용도 현재 시행 중인 것보다 훨씬 파격적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소득에 관계없이 65세 이상 인구 전부에게 연금 가입자 평균 임금의 20%인 월 32만원을 주는 방안을 내놓았다.

노령연금 대상을 65세 이상 인구의 80%로 확대하라는 민주당의 요구도 원래 이명박정부의 공약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으로 바꾸고 이를 국민연금으로 통합해 사각지대를 축소하겠다는 것을 핵심 노인 복지 공약으로 내놓았다.

◆정략적 수단으로 전락

민주당은 기초노령연금법에 규정된 대로 국회에서 연금제도개선위원회를 열어 지급 대상과 지급액 확대 등의 문제를 논의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위원회 구성을 거부하고 있다. 두 정당의 이념이나 가치관에 관계 없이 야당이 되면 ‘기초노령연금 확대’를,여당이 되고 나면 ‘확대 반대’를 외치고 있다.

조세연구원은 노인 전원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할 경우 재정 부담이 10년 뒤 GDP의 1.17%,20년 뒤 2.34%,2050년엔 4.10%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빈곤층을 지원할 여력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초노령연금이 선별적인 공공부조 제도인지 아니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노후소득보장 제도인지조차 설정하지 않은 채 정치권의 타협적 산물로 도입됐다”고 말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복지에 대한 뚜렷한 철학 없이 선거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정치권의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