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놓고 해석 분분…경찰 수뇌부 지도력 의심

갖가지 비위와 사건ㆍ사고로 국민적 신뢰가 추락한 경찰 조직이 일선 지휘관의 항명으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이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양천서 고문의혹 사건의 원인이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지나친 성과주의에 있다면서 자신과 조 청장의 동반사퇴를 요구하면서 경찰 조직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경찰 내부의 항명 사건은 황운하 총경이 2007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이 불거졌을 때 이택순 경찰청장이 한화 측 인사와 골프를 하고 전화통화를 하는 등 처신을 잘못했다는 판단 아래 이 청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경찰은 황 총경을 파면이나 해임, 정직 등 중징계할 방침이었지만 "비판의 목소리를 짓누르려 한다"는 거센 내부 반발 등에 부딪혀 감봉 3개월로 징계 수위를 낮췄고, 사건은 곧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번 항명 파동은 한직으로 분류되는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이었던 황 총경 때와 달리 `경찰의 꽃'인 경찰서장이 내부 시스템을 문제 삼아 직속상관에게 퇴진을 압박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더욱 클 전망이다.

◇성과주의 폐해냐, 감찰 불만이냐…해석 분분 = 채 서장은 이날 회견에서 양천서의 고문의혹 사건이 담당 경찰관의 잘못뿐만 아니라 실적 경쟁에 매달리도록 분위기를 조장한 서울청 지휘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적을 승진이나 보직 인사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일선 경찰관들이 범인 검거에만 치중하도록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양천서 사건으로 온 국민이 경악하는데도 근원적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일선 경찰에만 책임을 미룬다면서 지휘부가 바뀌지 않는 한 양천서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동반사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청은 사실 관계가 다르다며 채 서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날 배포한 `성과주의 취지 및 세부내용'이라는 제목의 설명 자료를 통해 "양천서 사건은 인권의식이 모자란 극소수 직원의 잘못된 범죄행위이며, 성과주의를 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보는 시각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과주의 목적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치안만족도를 높이고 조직 내 활력을 불어넣는 순기능이 상당하며, 대다수의 현장 경찰관들이 법과 절차에 따라 인권을 준수하며 잘 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항명 파문이 채 서장의 개인적인 감찰 불만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강북서가 올해 실적 평가에서 꼴찌 수준을 면하지 못한 데다 서울청의 집중 감찰을 받다 보니 서장 자신이 쌓여 있던 불만을 참지 못하고 폭발시켰다는 분석이다.

조 청장은 "성과주의 순위에서 꼴찌 했다고 해서 부담을 갖는다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정성평가에서 점수를 받는다"며 "하지만 채 서장은 문제가 있다.

업무에 신경을 안 쓴다.

감찰을 해도 4개월 연속 꼴찌 하는 것은 문제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채 서장은 "서울청은 문제가 심각하게도 실적평가를 감찰이 하고 있다.

감찰관이 떼로 몰려다니며 모든 것을 뒤지고 압박하고… 이런 것이 소문이 나기 때문에 직원들이 옥죄임에서 벗어나려 실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허위보고ㆍ성추행에 항명까지…안에서 곪는 경찰 = 항명의 배경도 문제지만 이번 파문은 철저한 상명하복의 계급 사회인 경찰 조직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번 항명 파문 전에도 서울 경찰의 기강 해이 조짐은 여러 차례 있었다.

양천서 고문의혹 사건을 비롯해 영등포서 여자 초등생 납치ㆍ성폭행 사건, 기동단 의경의 횡령ㆍ탈영 사건 등에서 보고가 늦거나 빠지면서 일선서에서 지방청으로 이어지는 보고 체계가 무너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최근에는 관악서 소속 경찰관이 술에 취한 채 여대생을 성추행했다가 징계 절차를 밟는 등 서울에서만 자체 사건ㆍ사고와 비위가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 치안을 책임지는 서장이 직속상관인 청장의 정책에 직격탄을 날리며 반발하자 조 청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찰관은 "다른 지방에서는 별문제가 없는데 서울에서만 큰 사건이 터지고 있다"라며 "성과주의는 전국 어디에서나 하고 있는데 서울에서만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지휘부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min7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