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에서 날아온 이메일
트위터·스마트폰의 명암
[金과장 & 李대리] 커뮤니케이션의 기술‥불러서 깨는 것보다 더 무서워…'빨간 이메일'의 경고

부서장의 책상 앞에 불려가 고개를 푹 숙이고 깨지는 풍경은 이제 옛말이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기획안을 직접 들고 굳이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아이디어를 구할 필요성도 많이 줄었다. 인터넷 메신저,이메일뿐 아니라 최근엔 트위터 등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각종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속속 등장하면서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하고 있다. 성공적인 직장생활의 출발점은 사내 커뮤니케이션이다. 다양한 의사소통 수단이 출현하는 만큼 '커뮤니케이션의 기술'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빨간 궁서체'의 공포

모 중견기업 기획팀에서는 "팀장한테 깨졌어?"란 말을 쓰지 않는다. "빨간 궁서체?"라고 하면 다들 알아 듣는다. 이유는 팀장이 팀원에게 메일을 보낼 때 글씨체와 색깔,폰트 크기로 경고 메시지를 띄우기 때문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전체 팀원들에게 '이번주도 우리 모두 힘냅시다'라는 내용을 담아 보내는 메일은 평이하게 검은 글씨체로 쓴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특정 팀원을 야단칠 때 이 팀장은 '세심'해진다. 길게 쓰지도 않는다. 보통 글씨체보다 몇 배는 큰 폰트를 굳이 '궁서체'로 변경한다. 색깔도 빨갛게 바꾼다. 문장도 딱 한 문장이다. '요즘 피곤한가 보지?' '보고서 다시 작성해' 등 요지만 보낸다. 간단하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선 다르다. 큼직한 붉은 궁서체를 보는 순간 압박감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기획팀 소속 김모 대리(30)는 "10글자도 안되는 문장이 메일을 새빨갛게 가득 메우고 있으면 자동으로 공포에 질린다"며 "불러서 30분 깨는 것보다 빨간 궁서체 한 줄이 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팀장이 일종의 암호로 심기를 전달하니 편리하기도 하고,야단치기 전에 붉은 궁서체 경고로 한번의 기회를 더 주는 의미도 담고 있어 팀장의 용인술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말로 해도 되는데 왜 굳이 이메일을?

국내 중견기업에서 5년가량 근무하다 3년 전쯤 굴지의 다국적 기업 한국법인으로 옮긴 유모 과장(38).이직은 처음인 데다 원래 다니던 회사와 전혀 다른 업종으로 옮긴 터라 굳은 각오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이 걸리는 게 있었다. 같은 팀 동료나 선후배들이 그에게 업무 관련 지시를 하거나 요청을 할 때 하나같이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얼굴 맞대고 일하면서 왜 굳이 이메일을 보낼까"하는 생각에 의아했다. 심지어 "이 사람들이 나랑 말을 하기가 싫어서 이메일을 보내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 과장이 다니던 이전 직장에서의 문화나 경험에 비춰볼 때 같은 부서 사람들끼리 이메일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한 달쯤 후 회식자리에서 유 과장의 '오해'가 풀렸다. 이 회사는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메일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었던 것.유 과장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트위터의 명암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대리(28)는 어느 날 같은 팀 박 모대리(28)와 얘기하다가 소름이 쫙 돋는 경험을 했다. 김 대리와 박 대리는 팀내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라이벌로 통한다. 평소 업무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얘기도 잘 하지 않는 사이다. 그런데 박 대리가 김 대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줄줄이 꿰고 있었던 것.여자 친구의 직업에서부터 최근 무슨 책을 읽었는지까지 알고 있었다. '내가 박 대리한테 이런 얘기를 했을 리가 없는데…'란 생각이 든 김 대리는 한참을 숙고한 끝에 박 대리가 자신의 트위터 팔로어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김 대리는 "트위터가 동료들 사이의 친분을 다지는 기회도 되지만 본의아니게 내 사생활이 줄줄 새 나가는 경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물론 트위터의 순기능도 적지 않다. 국내 한 광고기획사에 다니는 오모 과장(35)은 트위터를 아이디어 수집의 도구로 활용한다. 오 과장은 광고 기획을 할 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기획 아이디어를 항상 트위터를 통해 회사 내 선 · 후배 동료들에게 전파한다. 그러면 순식간에 사람들이 반응을 올린다. 오 과장은 "트위터는 형식상으로는 그냥 자신의 생각을 적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보다 부담이 없어서 좋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덕분에,스마트폰 때문에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앱 · 응용프로그램)도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성수 대리(32)는 "무료 앱이 좋은 게 나왔다 하면 사내 메신저로 쫙 돌린다"며 "좋은 정보를 많이 알려주는 후배들과 자연스레 대화를 트게 되고,밥도 한 끼 먹게 돼서 좋다"고 했다.

반면 스마트폰은 '족쇄'라고 외치는 직장인들도 있다. 음식료업체에 다니는 김모 대리(31)는 "상사가 회사 메일을 G메일로 포워딩해서 아이폰에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며 "외근 나가 있을 때도 자꾸 이메일 체크하라고 해서 솔직히 귀찮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지도상에 표시할 수 있는 '포스퀘어(4square)'도 일부 직장인들에겐 쥐약이다. 김 대리는 "동료 직원이 근무 시간에 나가 놀다가 무심코 포스퀘어 기능을 활용해 자기 위치를 트위터에 적어놨는데 깐깐한 선배가 그걸 보는 바람에 경을 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게시판 저널리즘'의 위력

시중은행에 근무하는 조모 대리(30)는 게시판 저널리즘의 신봉자다. 평소 '이런 것 불편하니 고치자'고 아무리 얘기해도 미동도 하지 않던 은행이 게시판에 건의사항을 올리면 일주일 만에 '된다,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조 대리도 물론 익명게시판을 이용한다. 하지만 은연 중에 신분이 노출될 가능성도 있어 여러 안전 장치를 마련해놓는다. 우선 자신이 누구에게 들은 것처럼 얘기를 풀어 나간다. 또 글을 올린 사람이 여성인 것으로 오인하도록 하는 표현을 사용해 신분 보호막도 쳐놓는다. 본인이 게시판에 써놓은 화제에 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조 대리는 "좀 치사한 방법 같기는 하지만 약자들에게 사내 익명 게시판이 유일한 해방구"라며 "이런 내용들이 그나마 호봉과 직급으로 누르는 억압적인 사내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윤/정인설/이상은/이고운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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