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랑스 샹티이 성
[해외문화 기행] (1) "태양왕께 바칠 성찬인데…" 요리사 바텔의 자살

"집사님,집사님.생선이 도착했어요. "

저녁 만찬을 위해 주문한 생선이 도착하지 않아 실의에 빠진 집사장 바텔의 방으로 한 시종이 희소식을 전하러 급히 달려왔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바텔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그는 방 한가운데 자신이 흘린 피로 짠 레드 카펫 위에 누워 있었다. 심장에는 가늘고 예리한 칼이 꽂혀 있었다. 자살이었다. 다른 두 군데에도 칼자국이 선명한 것으로 보아 집사는 세 번의 시도 끝에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루이14세 시대 최고의 요리사였고,최고의 향연 기획가였던 프랑수아 바텔의 최후는 너무도 허망한 것이었다.

기와공의 아들로 태어난 바텔은 가업에 흥미를 못 느껴 파티스리 도제수업을 받던 중 운 좋게도 당대 최고의 권력자로서 루이 14세의 재정 감독관인 장 푸케의 저택에 시종으로 들어가게 된다. 딱 부러지는 일처리에 엔터테이너의 재능까지 갖춘 바텔은 곧 푸케가의 집사장으로 발탁된다.

그러나 행운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야심만만한 푸케가 자신의 새 저택인 보-르-비콩트 완공 기념으로 루이 14세와 귀족들을 초대해 호사스런 파티를 열었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신하가 왕보다도 더 큰 저택을 짓고 럭셔리한 연회를 벌인 데 격분해 루이 14세가 푸케를 종신 금고형에 처한 것이다.
[해외문화 기행] (1) "태양왕께 바칠 성찬인데…" 요리사 바텔의 자살

파티를 조직한 바텔은 감금의 위협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구르빌의 추천으로 콩데 왕자의 저택인 샹티이 성에 들어가게 되고 얼마 안 되어 집사장에 임명된다. 샹티이 성은 건물도 건물이지만 당대 최고의 정원건축가인 앙드레 르 노트르가 조성한 형식주의 정원과 뱃놀이를 위해 조성된 수로로 당대에 명성이 자자했다. 그곳은 천부적인 연회 기획가 바텔을 위해 준비된 거대한 무대나 다름없었다.

집사장이 된 지 8년 후 바텔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 당시 정치적,재정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던 콩데공이 루이 14세와 귀족들을 샹티이 성으로 초대해 3일간의 향연을 베풀기로 결정한 것이다. 콩데공은 이를 통해 왕의 환심을 사고 그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생각이었다.

바텔에게도 이 세기의 향연은 큰 기회였다. 그런데 바텔은 왜 이 절호의 찬스를 죽음으로 마감했던 것일까? 향연에 참석했던 세비네 후작 부인이 딸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는 그 배경을 추측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해외문화 기행] (1) "태양왕께 바칠 성찬인데…" 요리사 바텔의 자살

편지에 따르면 바텔은 루이 14세를 위한 향연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친구 구르빌에게 향연을 준비하느라 12일 동안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해 머리가 돌 것 같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까다로운 기호를 지녔던 루이 14세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바텔의 부담은 더 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부담은 향연이 시작되면서 더욱 증폭돼 갔다.

첫날 저녁 만찬은 화려한 조명 아래 스물다섯 개의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식사 후에는 성 앞 연못에서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두 시간에 걸쳐 무대 공연이 펼쳐졌다.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가 연주됐을 법하지만 이 바로크 음악의 대가는 이때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밤의 스펙터클은 대성공이었다. 루이 14세와 귀족들은 놀라운 공연에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러나 정작 바텔 자신은 심한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예상치 못한 손님들의 참석으로 저녁 식사 때 두 개의 테이블에 바비큐가 제공되지 못했던 것이다. 향연 책임자로서 음식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데 대해 그는 큰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구르빌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내 명예는 땅에 떨어졌어요. 이건 정말 참을 수 없는 수치예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바텔은 더 큰 당혹감에 빠지고 만다. 저녁 만찬을 위해 주문한 생선이 폭풍우로 인해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는 구르빌에게 "아,나는 더 이상 이 불명예를 견디고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라는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구르빌은 그냥 푸념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친구를 본 마지막 순간이 될 줄이야.

바텔의 비극적인 에피소드는 2002년 롤랑 조페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다. 영화에서는 바텔의 자살 동기를 비정한 권력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이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존재임을 깨닫고 그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몸부림인 것으로 설정돼 있다.

[해외문화 기행] (1) "태양왕께 바칠 성찬인데…" 요리사 바텔의 자살

과연 그럴까. 이미 푸케의 집사장을 거치며 누구보다도 정치세계의 비정함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바텔이 아닌가. 이때 와서 갑자기 그 점을 자각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며 설득력도 없다. '킬링 필드''미션'의 감독이 만든 작품이라고 보기엔 어딘가 상투적이고 사색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음식문화사의 권위자인 도미니크 미셸이 주장했듯이 바텔은 향연 조직자로서 왕에게 누를 끼친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죽은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리라.오늘날의 상식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선택이지만 절대군주시대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텔은 자신의 붉은 피로 깐 레드 카펫을 밟고 명예롭게 죽음의 문을 나섰던 것이다.

정석범 미술사학 박사

▶정석범씨는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기행》이 있으며,현재 홍익대 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루브르 다음으로 많은 명작 보유한 샹티이 성

"사람들은 왜 나를 베르사유에는 일곱 번이나 데려가고 이곳에는 한 번도 안 데려왔던 거야?"

1968년 프랑스를 공식 방문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샹티이 성의 아름다움에 반해 던진 말이다. 파리 북쪽 42㎞ 지점에 자리한 샹티이 성은 중세시대에 처음 건설된 이래 19세기 말까지 증·개축을 거듭했다. 성의 주인도 여러 차례 바뀌어 오르즈몽가와 몽모랑시가를 거쳐 1632년 콩데가의 소유가 됐다.

성 안은 현재 박물관으로 개조돼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는데 루브르 다음으로 많은 명작을 보유하고 있다. 몰리에르와 샤토브리앙,마담 라파예트는 정원이 어우러진 이곳의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샹티이 성은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아 '007-어 뷰 투 어 킬''마리 앙투아네트'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고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는 '디비전 벨' 앨범의 유럽 투어 때 이곳에서 이틀 동안 무대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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