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녀의 얽히고 설킨 사랑을 그린 영화 '클로저'의 첫 대사는'헬로,스트레인저(stranger)?'다. 생전 처음 길거리에서 마주친 댄과 앨리스가 불가항력처럼 사랑에 빠져드는 신호탄이 되는 장면이다.

인맥을 관리하는 것이 영화 속 사랑처럼 누군가를 운명같이 만나 빠져드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전략적인 인맥관리가 필요하고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 접근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특히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네트워킹에 소외돼 있던 여성들은 인맥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다.

▼ 골드미스는 밤에 강하다
[2030 섹스& 더 시티] 골드미스의 男다른 인맥관리‥"Hello, stranger"


골드미스가 기혼 여성보다 인맥관리에 유리한 점 하나는 밤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일하는 김선진 과장(37)은 "회사별로 마케팅 담당 직원들 30~40명이 모임을 만들어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마다 친분을 쌓고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술자리를 갖는 것만큼 인맥관리에 좋은 것도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그 모임에서 우연히 경쟁사의 신사업 소식을 듣고 나름 '사내 특종'을 하기도 했다.

김 과장의 두 번째 모임은 '절대 미각자 모임'이다. 10~15명의 구성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각자 알고 있는 맛집을 소개하고 탐방하는 모임이다. 모임엔 남자가 반,30대 미스가 반이다. 그는 "내가 추천했던 명동 삼계탕집과 마포 생태탕집은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뿌듯해했다.

소개팅으로 인맥관리를 하는 경우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가 소개팅을 350번은 했죠.네이트온에 소개팅 폴더를 따로 만들어 놓고 '어장 관리'도 해봤는데 결국 부질없어요"라고 잘라 말했다.

▼ 떠난 직장의 인연도 인맥으로 유지하라

박진희씨(39)는 4년차 헤드헌터다. 전에는 3곳의 직장과 야간 대학원을 거쳤다. 천성적으로 사교성이 풍부하다고 '자부'하는 그의 가장 큰 인맥은 전 직장과 대학원 사람들이다. 박씨는 "소소하게 경조사를 챙기는 것부터 시작했지만 어느새 제 주도로 정기 모임을 연다"며 "관심사가 비슷해 동호회나 다름없다"고 소개했다.

남자들이 함께 있는 모임에선 두 달에 한 번씩 골프를 치러 가고 이따금씩 등산도 한다. 골드미스들의 모임에선 공연 · 전시회를 보러 가거나 미술과 와인에 관한 문화강좌를 듣는다. 분기별로 상하이나 홍콩 등 가까운 해외 여행을 함께 다녀온다.

헤드헌터이니 만큼 '될 성부른 떡잎'에겐 전략적으로 다가갈 것 같지만,그는 "맘 맞는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리다가 도움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얼마 전에는 30~40명을 지휘할 수 있고 한국말도 유창한 외국인을 섭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KBS '미녀들의 수다' 관계자와 친분을 두고 있던 덕에 적당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반기부터는 '요지'에 포진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 각종 최고경영자과정을 수강할 생각이다.

▼ 오고가는 선물 속에 싹트는 우정

식품회사에 근무하는 김재이 과장(36)은 신제품을 낼 때마다 홍보용으로 나오는 제품들을 지인들에게 돌린다. 가격이 1만~2만원대로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부담스럽지 않은 데다 가끔 와인이 답례로 들어오는 횡재까지 있다. 유통회사에 근무하는 이성희 부장(40)은 때마다 '삐콤씨'를 사서 선물한다. 적정한 가격에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까지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장은 "자고로 사람 사이엔 감사의 표시로 뭐라도 보여야 한다"며 "한 직장 후배는 만날 때마다 쿠키를 구워 락앤락 통에 담아오는데 노처녀여서 할 게 없어 그러나 싶다가도 매번 노력에 감동한다"고 말했다.

홍보대행사에 다니는 정지나 차장(35)은 "예전 삼풍백화점인가 성수대교인가 무너졌을 때 속옷과 먹을거리를 싸들고 가서 기자들에게 나눠줬던 홍보우먼은 지금도 업계에서 유명한 전설로 남아 있다"고 귀띔했다.

▼ 남성보다 사내정치에 어두운 이유는

직장 내 남자 직원들의 역사는 담배와 술에서 시작되듯 여직원들의 역사는 커피에서 시작된다. 신서희 과장(35)은 "여자들끼린 누구랑 커피를 마시느냐가 중요하다"며 "커피를 마시면서 상사,후배,사내 인맥 등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골드미스들은 한결같이 "남자들보다 여성들이 사내 정치에 약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여직원에 대한 편견이다. 같은 경영지원 부서를 가도 남자들은 인사나 기획 재무담당으로 가고,여자들은 홍보 · 마케팅이나 복지 · 후생팀으로 보낸단다. 신 과장은 "여자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어 신뢰를 받지 못하니 네트워크 만들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회식에 열심히 참여하지만 인맥 형성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남자 동료들은 여직원들이 끝까지 자리에 남으면 불편해하고 남자들만의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하기 때문에 알아서 1~2차 후 빠진다는 것이다.

성과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김성민 과장(36)은 얼마 전 패션 브랜드 투자 건을 따냈다. 그런데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김 과장은 "남자가 하면 '잘했다'고 하는데 여자가 하면 '어,제법인데'라는 반응을 보인다"며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런 상황이 많아져 씁쓸하다"고 고백했다.

정선이 과장(37)는 주니어 시절 회사에 과일이나 고구마를 싸와서 돌리거나 상사에게 "부장님,오늘 넥타이 참 멋져요"라는 사내 메신저를 날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너무 여성성이 강조되다 보니 예쁜 후배는 될지언정 믿음직한 후배로 포지셔닝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패였다"며 "지금은 성과로 나를 보여주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 인맥관리 중요하지만 강박관념은 버려야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는 저서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갤리온)에서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을 극복하라고 조언한다. 골드미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겪는 현상으로 원만한 대인 관계를 위해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우울해지는 것이다. 남에게 싫은 얘기를 못하고,어쩔 수 없이 하게 되면 상대방의 반응을 먼저 살핀 뒤 싫은 소리 같지 않은 말투로 얘기하고 나서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항상 '천사표'가 될 필요는 없다.

김 전문의는 "직장이 사회적 거주지이고 인간 관계를 규정짓기 좋아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직장에서 매일 만나면서도 주 2~3회 회식을 하고 호형호제하지만 결국 직장은 '일로 맺어진 관계'"라고 강조했다. 골드미스들이 상사,후배들과 술자리에서 호형호제 못한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