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경찰에 검거된 '칠성파' 두목 이강환(67)씨가 주목받는 것은 부산지역 폭력 조직의 대부격인 이씨에 대해 경찰이 처음으로 칼날을 들이댔다는 점이다.

이씨는 검찰에 의해 체포된 적이 있지만 경찰에 의해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검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칠성파는 한국전쟁 이후 부산 피난시절 조직원 7명을 시작으로 부산에서 활동했다.

결성 초기에는 부산 중구 광복동, 충무동 일대에서 미 군수품 밀수 등에 관여하면서 토착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5.16 군사혁명 이후 국가재건 최고회의 주도로 이뤄진 깡패 일제소탕으로 칠성파는 조직원들이 국토건설단에 동원되면서 1차 와해를 당했다.

1970년대 경제성장의 발판으로 이씨가 3대 두목으로 나서면서 다시 세력 확장에 나서게 된다.

그는 출소한 조직원과 전과자를 재규합해 밀수.파친코.유흥업소 등에 관여하며 세력을 키운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때부터 칠성파는 업권을 두고 20세기파와 주도권 다툼을 치열하게 벌였다.

그러나 제5공화국 출범으로 삼청교육대에 부산지역의 3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20세기파, 서면파 등 25개조직 330명이 당국에 검거되면서 2차 와해를 겪게 된다.

이씨도 1980년 초 히로뽕을 밀조한 혐의로 구속됐고 1985년 출소한뒤 조직 재결성을 시도하지만 세력 약화 및 내부 반목으로 칠성파는 영도파와 신칠성파로 갈라져 나갔다.

이씨는 조직재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1988년 10월 7일 경주 서라벌회관에서 '전국 전과자 갱생 구국청년회'인 화랑신우회를 결성,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같은해 11월에는 칠성파 간부와 전국의 두목급 폭력배 23명을 대동하고 일본에 건너가 야쿠자 두목과 의형제를 맺고 자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이씨는 그러나 1991년 검찰의 '조직폭력과의 전쟁' 때 구속 수감돼 8년간 복역했으며, 2000년에도 부산 모 나이트클럽 지분 싸움에 연루돼 검찰에 구속되는 등 검경의 단속에 부침을 계속했다.

2000년 중반 들어서는 경찰의 집중적인 단속이 이어지자 대규모 조직 운영보다는 소규모 단위로 활동하며 합법적 범위내에서 조직활동을 이어갔다.

부산경찰청 폭력계 관계자는 "이강환 이후를 두고 조직 내부가 양대 세력으로 나뉘지면서 주도권 쟁탈을 위한 갈등양상이 표면화 되고 있다"며 "칠성파가 약화되면서 반칠성파 세력의 득세 양상도 뚜렷해지고 있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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