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학년 대학진학률은 82%.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교졸업생 열에 여덟이 대학에 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고학력화는 심각한 중소기업 구인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1990년 33%였던 대학진학률은 20년 사이 세 배 가까이 높아졌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사람이 없다며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기업 수의 99%에 이르고 고용의 88%를 책임질 정도로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반면 12만명의 대졸 실업자들은 '고학력 백수'로 전락한 상태다.

이 같은 미스매치가 계속되는 한 '산업 한국'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지금 산업현장의 주축인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할 때면 상상하기 힘든 인력 공동화가 닥칠 것이 분명하다"며 "학사모를 썼다고 눈높이만 높아진 대졸자가 줄어들어야 중소기업 인력난이 다소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다양했다. 다만 두 가지 점에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우선 기업과 구직자 간에 채용 · 취업에 관한 인식 차가 워낙 큰 만큼 근본적인 미스매치 해소는 단기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따라서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파악하면서 차근차근 해법을 찾는 끈기와 노력이 요구된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기업 보는 안목 키우고 눈높이 낮춰야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미스매치'.중소기업 경영자들은 고학력 구직자들이 품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불만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배가 덜 고픈 것 같다'며 탓하고,고학력자들은 어떤 중소기업이 우량 업체인지 알지 못하면서 '졸업장 받기까지 투자한 돈이 얼마인데'라며 중기 입사를 꺼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 의식을 개선하라거나,눈높이를 낮추라는 캠페인도 효과는 있겠지만 무엇보다 대학 측이 관련 정규과목 신설을 통해 재학생들이 실력과 비전을 갖춘 우수 업체를 골라낼 안목을 갖도록 도와주는 게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제대로 된 기업정보를 제공해 졸업생들이 자발적으로 중소기업을 선택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최소 30만개 이상으로 추산되는 국내 우수 중소기업의 재무상태와 기술,임금 · 복지,최고경영자(CEO)의 철학,근무환경,비전 등을 일목요연하게 검색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나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 등록된 구직자에게 모바일 메시지 등으로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게 그의 제언이다.

전산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대졸자에 대한 정보기술(IT) 교육 활성화도 모색해 볼 만하다는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의 생각은 정책입안자들의 눈높이를 구직자에 맞춰보자는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컴퓨터 스마트폰 등 첨단 IT 기기에 익숙한 신세대 구직자들의 성향을 기술 개발로 연결시켜 보자는 아이디어다.

이와 관련,그는 30만명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양성을 제안했다. 조 회장은 "앞으로는 어떤 전자제품이든 내장 소프트웨어가 들어가지 않는 게 없을 것"이라며 "세계적 경쟁력이 있고,신세대들도 관심있는 산업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분산 지원보다 효과적이며 산업의 발전 방향과 궤를 같이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사격(社格)' 높여 구직자 유인해야

인재경영 전문가인 가재산 조인스HR 대표는 고학력 청년실업 문제의 원인을 '근로 의욕의 퇴화'로 요약했다. 공무원,공기업 직원,교사 등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에 젊은 구직자들이 몰려드는 현상도 여기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성향을 탓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인재 유인책을 고안하고,일단 채용했다면 키우는 데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가 대표는 "수도권에서 평일 골프가 성황인 이유가 강남 아줌마들과 중소기업 사장들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며 "인재가 중요하다면서 정작 인재 교육에 과감히 돈 쓸 줄 아는 중소기업 CEO가 얼마나 되는지 되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영수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한양넉스 회장)은 "시설투자도 좋지만 문화경영,복지경영 등을 통한 품격 있는 기업을 먼저 만드는 게 순리"라며 "아울러 단기간의 임금 복지 수준은 대기업보다 못하지만 포괄적인 업무능력 향상 등을 고려할 경우 중소기업에서의 생애임금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입사가 그들에게 왜 이익인지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재경영에 투자할 여력 키워줘야

구직자들의 중소기업 취업을 유도하기 위해선 '비용과 효율'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민화 중소기업 호민관은 "채용 보조금 등 직접 지원은 고용유지 비용을 감안할 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며 "유명무실화돼 있는 스톡옵션제 등을 활성화해 기업이 구직자에게 제시할 카드를 더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중소기업이 성공해야 우수 인재가 몰리고 인재경영도 가능한 것"이라며 "국내 중소기업의 70%가 B2B 형태의 납품업체인 만큼 대기업 등과의 거래에서 적정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선순환 배분구조를 빨리 만들어 나가는 것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인재경영에 투자할 여력을 만들어 주는 것도 정부의 몫이라는 지적이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사업주가 부담하는 4대 사회보험료를 정부가 상당부분 지원하는 방안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며 "현재 프랑스는 '고용촉진 계약'을 통해 장기 실업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사회보장비를 면제하고 보조금도 지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