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강사 스카우트 전쟁…'연봉 20억' 소문도
강사들도 응시해 문제 '암기'

고액 연봉에 이적을 둘러싼 납치ㆍ폭행과 같은 학원들 사이의 제로섬(zero-sum) 게임.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 서울 강남 SAT(Scholastic Aptitude Test. 미국 수학능력시험) 학원가에서 점차 실체를 드러내는 복마전의 양상이다.

31일 학원가에 따르면 지난해말 재계약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R어학원 관계자에게 납치됐던 손모(38)씨는 SAT 학원가의 '스타 강사'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 강남의 유명 SAT학원 원장이자 유명 강사인 A씨는 "스타강사도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가 있다.

손씨는 독보적인 1위였으며, 나를 포함해 2위부터 10위까지의 몸값을 다 합쳐야 손씨와 비슷한 정도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SAT 학원가에서 스타로 통하는 강사의 연봉은 1억5천만~2억원 수준. 손씨는 이를 훌쩍 뛰어넘는 20억원대의 연봉을 받았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A씨는 "R어학원과 손씨의 계약이 올해 3월로 끝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가을부터 학원 사이에 손씨를 스카우트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졌다"며 "손씨에게 우리 학원에 오라고 제의했더니 연봉 20억원을 달라고 해 포기했다.

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영입하려는 곳도 많았다"고 전했다.

연봉 20억원을 보장해 주지는 못해도 손씨의 수업을 듣는 학생의 수업료는 전액 손씨가 가져가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면서까지 손씨의 영입을 추진하는 곳도 있었다는 것이다.

A씨는 "손씨가 몰고다니는 학생 수를 최소 1천명에서 많게는 2천명까지 보기도 한다"며 "학원 규모만 받쳐준다면 20억도 투자할 만하다"고 말했다.

SAT 학원들이 이처럼 손씨를 두고 스카우트 전쟁을 벌이는 것은 그의 뛰어난 강의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손씨가 처음 학원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2년이다.

이후 2005년까지는 SAT와 토플 강의를 같이 했고 SAT에 집중하면서부터 스타강사로 떠올랐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손씨를 잘 아는 강남 모 어학원장 B씨는 "손씨가 처음부터 스타강사였던 것은 아니다.

그도 처음에는 월 2만원, 3만원짜리 강의부터 시작했다.

새벽 3~4시까지 수업준비를 하고 문제분석을 열심히 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손씨는 매번 SAT에 응시해 문제를 통째로 외워왔다고 B씨는 전했다.

시험장에 들어서면 손씨는 4시간 동안 다른 과목은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인 작문(Writing) 문제만 외운 뒤 시험이 끝나면 바로 문제를 복원했다는 것이다.

B씨는 "외울 능력은 없는데 스타가 되고 싶어서 문제지를 훔치는 강사가 문제지, 손씨처럼 자기 머 릿속에 담아와서 교재 개발하는데 쓰면 능력 있는 강사라고 본다"고 말했다.

B씨는 최근 SAT 시험지를 유출하려다 구속된 장모(36)씨에 대한 소문도 전했다.

지난해 11월과 12월 시험에서 장씨가 가르친 학생들이 유난히 수학·물리학 점수를 잘 받으면서 장씨는 스타강사로 급부상했는데, 당시 학부모들 사이에서 `신이 내려준 족집게 강사'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장씨가 구속되고 경찰 수사로 지난해 10, 11, 12월 시험에서도 문제지를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자 학부모들은 "어쩐지 수상하더라니…"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B씨는 전했다.

지난해 여름 R어학원에서 수강한 학생수는 약 2천명으로 100명 내외의 학생을 받고 있는 다른 학원에 비하면 독보적인 숫자다.

그러나 손씨가 이적한다면 2천명 가운데 최소한 절반은 손씨를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게 학원가의 예상이다.

B씨는 "R어학원 대표가 학원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손씨의 이적은 학원을 파는데 큰 악재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손씨가 빠지면 R어학원의 독보적인 지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를 막으려고 손씨를 납치하면서까지 재계약을 강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손씨는 지난달 21일 R어학원 관계자들에게 납치돼 경기도 가평의 한 별장에 감금당했으며, 어학원 관계자들은 손씨를 마구 때리고 흉기로 위협해 재계약 서류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손씨와 친분이 두터운 C씨는 "손씨가 R어학원 관계자를 경찰에 신고하고 몸을 피했는데 R어학원에서 지난 15일 손씨를 찾아내 다시 협박하고 학원에서 자신을 납치한 사실이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하게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손씨는 심한 폭행으로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고 납치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 3개월 판정까지 받았으며,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C씨는 "어제(30일)도 통화를 했는데 학원의 오너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다.

돌아가는 현실 자체가 괴롭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손씨가 열심히 공부하고 강의만 했을뿐인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며 "성실하게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에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은 무시되고 고액강사니 족집게 강사니 하는 멍에를 혼자 뒤집어 쓰게 된 상황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kind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