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 사태 이후 사실상 사문화 상태
형사단독 경력상향 방안 실효성 기대 힘들어


최근 시국사건의 잇단 무죄 판결에서 촉발된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법관 인사와 운용 등 사법제도 개선 논의로 옮겨붙으면서 개선안에 담길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

25일 법원 안팎에선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형사단독판사의 경력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 외에도 기존의 `재정합의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이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재정합의제도란 단독판사에게 배당될 사건이라고 중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재정결정부를 통해 합의부에 배당하거나 단독판사들로 합의부를 구성해 재판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는 1년 이상의 징역ㆍ금고형에 해당하는 형사사건은 1심 재판을 재판장과 2명의 배석판사로 구성된 합의부가 맡지만, 형량이 그 이하인 사건은 재판장 1명으로 구성된 단독부에서 담당한다.

법조계 일각에선 재정합의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사회ㆍ정치적으로 민감한 형사단독 판결을 합의부에 배당함으로써 이번 사법갈등 사태와 같은 불공정 판결 시비를 불식시키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ㆍ정치적으로 민감한 형사단독 사건을 재정합의를 통해 합의부에 배당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화된 상태다.

이는 배당된 사건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재정결정부에 사건을 회부할 경우 자칫 무능하고 소신없는 판사란 평가를 받을 수 있어 단독 판사들이 재정결정부 회부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년에 불거진 신영철 대법관 사태 이후 재판 배당권을 가진 법원장조차 민감한 사건의 재판부를 교체하는 데 큰 부담을 갖게 된 것도 재정합의제도를 활용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제로 PD수첩 사건의 경우 사안의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도 등을 고려해 당초 사건을 합의부로 넘기는 재정합의 방안이 검토됐지만, 재판부 조정에 따른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단독부에 배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그러나 재정합의제도가 판사 개인의 성향이나 경력 때문에 판결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 상황의 해법으로 유력하게 검토중이다.

법원 수뇌부가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형사단독판사의 경력 요건을 현행 5년 이상에서 10년 이상으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이 현재 법관의 인력구조상 당장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도 재정합의에 관심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대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기존의 재정합의를 활용하는 방안도 판결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