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판결'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양형기준을 도입한 이후 법원 판결의 90%가량이 기준 내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양형기준과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거나 양형기준에서 벗어난 이유를 알 수 없는 판결도 있어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13일 대법원에 따르면 양형기준 시행 이후 내려진 판결은 2000여건으로 이 중 90%가량은 양형기준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 이는 양형기준 준수율이 53% 정도인 미국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대법원은 살인,뇌물,성폭력,강도,횡령,배임,위증,무고죄 등 8종류의 범죄에 대해 범행동기,피해액,범죄 가담 정도,범죄 후 조치,반성 여부 등을 감안한 양형기준을 정해 작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올해 6종류 범죄를 양형기준 적용 대상에 추가할 계획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양형기준은 권고사항으로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면서도 "판사들이 양형기준 미적용 범죄도 양형기준 방식과 비슷하게 판결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양형기준을 벗어나는 사례들도 눈에 띄고 있다. 기준에 없는 피고인 연령을 토대로 권고형을 벗어나 판결하는 사례들이 많았고 '조두순 사건' 이후 사회 문제화된 성폭행범에 대해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형량을 낮추는 사례도 있었다. 부산지법은 지난 8일 함께 근무하는 19세 여종업원을 모텔로 데려가 술을 먹인 후 의식불명인 피해자를 윤간한 혐의로 기소된 J씨(23)와 D씨(22)에 대해 양형기준(징역 4~6년) 보다 낮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술에 취한 우발적 범행이란 점과 22~23세인 피의자들의 장래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양형기준에 따르면 '심신장애 상태를 야기해 강간한 경우'는 가중처벌 대상이다.

양형기준은 성인 피고인에 한해 적용되는데 범행 당시 청소년인 범죄인에 대해서는 예외나 형량 감경 조항을 두지 않아 기준에서 벗어난 사례도 있었다. 또 과거 벌금형을 수차례 받았는데도 처벌 전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해 감경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노숙자를 폭행해 돈을 갈취한 김모씨에 대해 "벌금형을 4차례 선고받은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처벌 전력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권고형(징역 3~6년)을 벗어나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양형기준의 감경 · 가중 사유를 재차 적용해 권고형을 일탈했다는 '이중평가' 논란도 빚어지고 있다. 대구지법이 지난해 10월 만취한 피해자를 윤간한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권고형(징역 4~6년)보다 낮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자 검찰은 "형량범위 결정 때 고려됐던 피해자와의 합의나 피고인들이 초범인 사정을 재차 고려하고 이를 이유로 권고형을 벗어나는 판결이 내려졌다"며 항소했다. 대구고법은 이에 "양형 재량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며 지난달 항소를 기각했다.

권고형보다 더 엄격하게 처벌한 경우도 있었다. 부산지법은 지난해 11월 외삼촌을 식칼로 찔러 살해한 후 13조각으로 토막내 유기한 김모씨에 대해 "극도로 잔혹한 행위로 일반인에게 큰 충격을 줬다"며 권고형(징역 10~13년)의 배인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법원조직법에는 양형기준을 벗어나 판결할 때 사유를 판결문에 적도록 하고 있지만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부산지법은 지난해 10월 손모씨에 대해 살인죄를 물어 권고형(징역 10~13년)보다 낮은 9년을 선고하면서 감경 · 가중 사유만 적었을 뿐 기준에서 벗어난 사유는 따로 적지 않았다. 손씨는 지난해 7월 재결합을 거부하는 전 여자친구를 소화기로 내리쳐 두개골 함몰로 사망에 이르게 해 기소됐다. 법원조직법은 일탈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경우에 대한 제재 조항 등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