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사 '글로벌 경쟁격화' 공감…相生의 길 텄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21일 내년 임금 및 단체협상안에 전격 합의,1994년 이후 15년 만에 무파업 타결이란 기록을 세우게 됐다. 노사가 기본급 동결안에 합의한 것은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측이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도 기본급 동결안을 관철,기아자동차 등 다른 업체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사측 일관성과 노조 실리주의 '합작'

극적인 무분규 타결은 노사 양측이 '교섭을 내년으로 미룰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한 결과로 풀이된다. 사측은 협상 초기부터 '임금 동결'을 고수했다. 올해 현대차가 좋은 실적을 낸 배경이 정부의 세제혜택과 환율효과 등 대외여건 덕분이란 점에서,임금을 올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요타 GM 등 최근 구조조정을 완료한 글로벌 경쟁회사들이 현대 · 기아차가 역점을 둬 온 소형차 · 신흥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어 원가 절감 및 투자 확대가 절실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실리주의 노선을 표방하며 지난 9월 당선된 이경훈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이 성과급을 많이 얻어내는 대신 기본급 인상안을 양보한 점은 결정적인 실마리가 됐다.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온건 · 중도 성향의 지도부를 선택한 것은 연례 파업에 대한 염증을 드러냈던 것"이라며 "집행부가 이 같은 정서를 감안해 판을 깨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얻어냈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22년간 1994년 한 해만 빼고는 매년 파업을 벌여왔다. 작년에도 협상 기간 중 7일간 파업해 2100여억원의 매출 손실을 냈다.

금속노조 게시판 등을 달군 '여론'은 노사 간 조기 타결에 힘을 실어줬다. 게시판에는 '국민 세금으로 이익 내고 살 만하니 성과급을 거론하나''세제혜택을 본 현대차가 돈잔치하면 고객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 등의 글이 속속 올라왔다.

◆조합원 투표가 관건 될 듯

노사 합의안은 조합원 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야 정식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투표 참여 조합원 중 50% 이상이 반대하면,노사가 또다시 밀고 당기는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 노조는 3일간의 공고 기간(투표일 포함)을 거쳐 23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올해 지부장 선거 당시 2000여표 차이로 고배를 마신 강성파 조직과 정치 투쟁을 강조해온 현장 조직들이 일반 조합원을 상대로 부결 운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작년 협상 때 기본급 대비 5%가 넘는 임금인상과 성과급 300%(통상급 대비),일시타결금 300만원 등을 지급한다는 데 합의했지만,조합원 투표 결과 61.2%의 반대로 부결돼 20여일간 진통을 겪었다. 내부에선 이번 협상안이 기본급만 동결했을 뿐 '노조에 퍼주기' 논란이 일 정도로 성과급이 많다는 점에서 조합원 투표 결과를 낙관하는 분위기다. 성과급(300%)과 일시타결금(500만원),주식(40주 · 21일 종가로 450만원 상당) 등을 합칠 경우 1600만~2200만원에 달한다.

◆'강성 노조' 기아차는 난항

현대차와 달리 기아차 노사교섭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날 밤 늦게까지 협상을 진행했지만 "임금인상 보따리를 풀라"는 노조와 "임금동결안을 먼저 수용하라"는 사측 의견이 맞서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기아차 노조는 "사측이 추가로 양보하지 않으면 쟁의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지부장 선거에서 강성파가 장악한 기아차 노조는 지난 주말 소하리 · 화성 · 광주 등 3개 공장의 생산을 중단했다. 크리스마스 연휴(24~26일) 특근을 거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사측 관계자는 "연말 노후차 지원제도가 종료되기 앞서 신차 출고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데 노조가 생산을 거부하고 있다"며 "노조에 끌려다니지 않고 기본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길/하인식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