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생들이 최악의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내년 1월 수료 예정인 39기 사법연수원생 978명 중 판검사 임관권에 들지 못하거나 대형 로펌의 스카우트 대상에 오르지 못한 연수원생들 얘기다. 수십 개의 원서를 뿌려도 겨우 한두 군데서 면접 통보가 오는 것은 이제 예삿일이 됐다. 성적이 어중간한 여자 연수생들 중 군대에'말뚝'을 박는 사람은 작년보다 10배 늘었다. 2년 동안 '무급 고용'에도 경험만 쌓게 해준다면 마다하지 않는 연수원생들도 적지 않다. 양대권 사법연수원 기획교수(판사)는"작년에도 어려웠는데 올해는 훨씬 더 어려운 최악의 기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20여개 원서 뿌려 면접 통보 단 2곳

최종성적이 600등권인 A씨(30 · 남).사실상 2학기 최종시험이 끝난 지난 10월부터 20여 군데에 원서를 넣었지만 면접을 보라는 통보를 한 것은 단 두 곳이다. 그는 최근 면접을 마치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A씨는 "400등 정도 돼도 면접조차 못 봤다는 친구들이 수두룩하고 주변에 됐다는 사람이 거의 안 보인다"며 "심리적으로 안정이 안 되고 계속 불안한 상태"라고 말했다. 39기 중 판검사에 지원한 216명과 10위권 로펌행을 확정지은 100여명을 제외한 대부분은 A씨와 비슷한 처지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잉여인력'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연수원생들의 당혹감은 상상 이상이다. 그나마 좋은 자리는 연수원 성적과 인맥 등 비공식적 루트 등으로 일찌감치 결정돼버리니 자리가 더 좁을 수밖에 없다.

작년 말부터 구직활동을 시작했으나 1년 만인 최근 중견 로펌에 취직을 확정한 B씨(28 · 남)는 "누군 되고 누군 안 된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어렵게 들어간 중소 로펌이라도 취직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 초순께 중소 로펌에 어렵게 취직한 38기 연수생 C씨(남)는 몇 개월 일하지도 못하고 회사를 나왔다. "회사 사정으로 다음 달부터 급여 지급이 어렵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애초 계약했던 연봉보다 훨씬 삭감한 금액을 제시하며 자퇴를 유도하는 중소 로펌도 많다. 형사소송은 판검사 출신 전관들이 쥐고 있고,변호사 직역의 특성상 기존 인력의 정리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매년 1000여명씩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38기 가운데 17명은 연수원 수료 반 년이 지난 올해 6월까지도 미취업 상태로 남아 있었다. 양 교수는 "물론 아직 취업 초반기지만 지금 추세로 볼 때 내년 중순에는 미취업자가 훨씬 늘어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여자는 아예 군대 말뚝…임관권은 느긋

작년 38기 중 최소 10년 이상 복무해야 하는 장기 군법무관에 합격한 여성은 1명이었지만 39기는 10명으로 늘었다. 성적이 어중간해 임관도 못하고 메이저 로펌도 못 갈 바에야 안정적이고 오히려 우대받을 여지가 큰 군대에 '말뚝'을 박겠다는 계산이다. 남녀를 불문한 복수의 연수생들은 "로펌은 여자 연수생 채용을 꺼린다"고 입을 모았다. 업무 특성이나 출산 등 여러 문제로 볼 때 남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올해 17명을 뽑는 국선변호사에 39기 연수생들은 180명이 지원했다. 작년 38기 76명보다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4명을 뽑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에도 34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물론 임관권인 판검사 지원생들에겐 다른 세상 얘기다. 메이저 로펌은 작년 말부터 우수 연수생들에 대한 입도선매에 나서 올해 3~7월 사이에 채용을 확정했다.

연수원 성적이 40등 선인 D씨(29 · 남)는 지난 7월 국내 메이저 로펌 한 곳에 채용이 확정됐다. 연수원 성적이 30~40등 선인 E씨(29 · 여)는 최근 서울중앙지법 판사를 지원했다. 판사 지원생들은 대체로 사전에 몇 등 선에서 끊길지를 예측하고 지원하기 때문에 대부분 붙는다. E씨는"주변의 부러움과 시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고 말했다.

◆줄세우기에 '버림받은 기분'

중소 로펌에 취직하지 않은 연수원생들은 단독 · 공동 개업이나 고용변호사로 취직하거나 공공기관 · 사회단체,사내변호사의 길을 택한다. 대체로 원하지 않던 길이다. 최근 중소 로펌에 들어간 K씨(32)는 "일을 많이 못 배우고 위치가 애매한 사내변호사는 다들 싫어한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고 성적이 안 좋은 연수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개업이나 고용변호사의 길로 내몰린다. 고용변호사는 언제 해고될지 모르며 급여도 제대로 보장이 안 된다.

중하위권 성적인 G씨는 "개인사무소에 2년 무급으로 들어갔다"며 "개업해서 적자를 보는것 보다 무급으로라도 일을 배우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많은 연수생들이'2년 동안 판검사 임용을 위한 성적 줄세우기에 당하고 버림받았다'는 기분을 호소하곤 한다"며 "사법시험을 통과하면 인생이 보장된다는 말은 확실히 옛말이 됐다"고 전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