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향하던 이환욱하사 부친상..父 "장례식보다 임무수행"

"원래는 네 엄마를 더 사랑하는 데 오늘은 너를 더 사랑한다고 해야되겠지..(중략)..아빠는 아빠 몸을 지킬테니 아들은 걱정 말고 소말리아 해역을 지켜서 대한민국의 힘을 세계만방에 보여다오."
진해로부터 이역만리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청해부대로 날아든 한 통의 편지가 해군 전 장병의 가슴을 적셨다.

우리 선박 보호와 해적퇴치를 위해 지난달 20일 소말리아 해역으로 떠난 청해부대 3진 충무공이순신함에 승선 중인 이환욱(21.부사관220기) 하사에게 지난 14일 청천벽력 같은 통신문이 한 장 날아들었다.

췌장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부친이 지난 13일 끝내 숨을 거두었다는 비보였다.

지난 18년간 해군 정비창 군무원으로 함포 등 해군 무기체계를 정비해온 아버지 이성우(51) 씨는 작년 7월부터 휴직을 한 채 병마와 힘겹게 싸워왔다.

통신문을 받아든 이 하사는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불과 한 달전 소말리아 해역으로 떠나던 날 투병생활로 부쩍 수척해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남긴 유언을 전해듣는 순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아버지 이씨가 사망 직전 "청해부대원으로 해외파병 중인 환욱이는 국가에서 부여한 임무를 수행 중이니 사망 소식을 알리지 말고, 행여 알게 되더라도 공무가 더 중요하니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것.
평소에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개인보다는 국가와 조직을 먼저 생각하라"고 당부했던 이씨는 이순신함이 파병함정으로 결정돼 아들이 아버지를 염려해 배에서 내리려고 했을 때에도 "공무가 우선"이라며 등을 떼밀었다고 한다.

여기에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전 오히려 아들을 격려하는 내용을 담은 마지막 동영상도 이 하사에게 전달됐다.

이씨는 3분짜리 동영상에서 "소말리아 해역을 지켜 대한민국의 힘을 만방에 보여달라. 자랑스럽다 내아들. 파이팅"이라고 말했다.

이 영상을 함께 지켜본 해군 동료들도 모두가 펑펑 울었다고 한다.

동영상 제작은 이씨가 투병 중인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작전사 정훈공보실장 박순제 중령이 아들 격려 메시지를 만들자고 제안해 이뤄졌다.

해군사관학교에서 계약직 근무원으로 부대 내 행사용 꽃을 재배하는 모친 강영자 씨는 부대에 남편의 사망소식과 함께 유언을 알리면서 유언대로 아들에게는 전하지 않으려 했지만 부대에서 "도리가 아니다"라며 이 하사에게 전문을 보냈다.

소식을 접한 3대 청해부대장인 김명성 대령은 이 하사에게 즉각 항공편을 이용해 귀국하라고 명했지만 아들은 부대장보다 아버지의 명령을 받들었다.

현재 오만 근처 해상에서 한달째 임무를 수행 중인 이 하사는 국내 언론과 전화인터뷰에서 "장남으로서 장례식에 가는 게 마땅한 도리지만 아버지의 바람대로 유언을 지키는 것이 더 큰 효도이며 군인의 길이라 생각한다"며 내년 봄 정상적인 임무교대 시까지 귀국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들에게 마지막까지도 조국을 먼저 생각하라는 가르침을 주신 아버지의 마음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며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동생을 잘 돌보는 늠름한 아들이 되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이 하사는 평생 봉사의 삶을 살기 위해 부산 동의대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다 아버지가 암으로 작년 7월 휴직하자 현재 고3인 동생과 아버지 병원비 걱정에 스스로 해군 부사관에 지원했다고 한다.

소식을 전해들은 김태영 국방장관도 이 하사와 그 가족에게 격려 서신을 발송하기로 했다.

정옥근 해군참모총장도 직접 이 하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하사와 부친, 모친 모두 군에 종사하는 공인으로서 더없이 훌륭한 귀감이 됐다"며 "임무수행 중에 상을 당해 힘들겠지만 임무를 잘 완수해 부친의 숭고한 뜻을 이루고 장남으로서 어머니와 동생을 위로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해군 관계자는 20일 "이씨가 약 18년6개월간 해군 군무원으로 재직했기 때문에 20년 규정을 채우지 못해 연금을 못 타게 됐다"며 "이 하사 가족의 형편이 어려운 점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해군은 이 하사를 대신해 아버지의 장례식에 장병을 보내 정성껏 도왔고, 부자의 남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을 본받도록 전 장병에게 공지하는 한편 해군 인터넷 블로그 `블루페이퍼'에 사연과 동영상을 올렸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