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환헤지 상품인 키코(KIKO)는 기업들이 은행보다 최대 수 천 배나 불리하고 손해를 볼 확률이 큰 불합리한 상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계량경제학의 세계적 석학인 로버트 앵글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키코계약무효소송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 "키코계약의 불공정성을 의뢰한 17개 기업 가운데 은행의 기대이익이 기업의 기대이익보다 1624배나 높게 한 계약을 체결한 곳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키코는 기업이 환위험을 헤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행이 환위험을 헤지하는 어처구니없는 계약"이라고 밝혔다. 앵글 교수는 외환은행 등을 상대로 키코계약무효소송을 제기한 D사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앵글 교수는 선진국에서 사용되는'헤스톤 모형'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17개 기업의 기대이익은 143억원인 데 반해 은행 측의 기대이익은 656억원이었다고 설명했다. 환율 변동,상품 매도 혹은 매수 시점 등 여러 변수를 감안했을 때 은행이 평균적으로 4.6배나 많은 이득을 챙기도록 상품이 설계됐다는 주장이다. 앵글 교수는 "A사의 경우 기대이익은 600만원인 데 반해 은행의 기대이익은 48억여원에 달했다"며 "600만원 환헤지를 하기 위한 대가로 48억여원의 환손실을 책임지는 계약을 체결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은행 측은 이에 대해 "불합리한 데이터를 갖고 추정한 것으로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고 강하게 반박해 향후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외환은행은"계약 체결당시 4~5%였던 환율변동성을 따져 옵션 가격을 산정해야 하는데 무려 15배 높은 외환위기 시절 변동성을 자의적으로 추정해 사용했다"며 "은행 이득의 결정적 변수인 변동성을 이렇게 책정한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외환은행 측은 미 MIT대학 스티븐 로스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앵글 교수 측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점을 밝혀내겠다고 강조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