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중 이씨 있으면 손 들어보세요. 나도 이씨입니다. 전주 이씨.내 이름은 이수배입니다. "

지난 5월 고려대에서 열린 글로벌 리더십 특강.이날 강사로 나선 아흐메드 A 수베이 에쓰오일 최고경영자(CEO · 48)는 자신을 '이수배'로 소개했다. 본명 수베이를 한국식으로 응용한 이 발언에 강의실은 일순 폭소가 터졌다. 지난 삼복더위에는 삼계탕을 먹으면서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고사성어를 언급,동석한 임직원들이 감탄하기도 했다. 애창곡은 조용필의 '친구여'.작년 3월 한국에 첫 부임한 그가 한국문화에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수배' CEO가 한국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편 사회공헌 활동 등을 활발하게 펼친 공로로 16일 한국경영인협회가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지식경제부,대한상공회의소가 후원하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외국인 특별상'을 수상했다. 외국인이 기업인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수상 직후 기자와 만난 그는 "지역사회 봉사나 사회환원 활동은 어느 기업이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예상치 못한 상을 받게 돼 영광스럽다"며 "수상에 걸맞은 기업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 고객과 주주가치 사회공헌을 위한 활동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수베이 CEO는 에쓰오일의 최대 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엔지니어링 원유생산 마케팅 등 분야에서 27년간 근무했고,일본법인장을 지낸 아시아통(通)이다. 그가 강조하는 경영철학은 '소통'의 중요성.상하좌우,조직부문 간의 소통과 대화 확산을 위해 본인이 직접 정기적으로 임직원들과 점심,저녁식사를 자주 하고 등산을 가는 등 스킨십에 공을 들이고 있다. 거리가 먼 울산 온산공장도 매달 2~3차례 방문한다.

한국의 문화와 사회,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을 지속적으로 탐독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한국식 리더십 경영이 효과를 발휘한 덕일까. 에쓰오일은 지난 3월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S&P와 무디스 등으로부터 아시아 정유업계 최고 등급인 BBB와 Baa2를 획득하는 등 대외신인도를 높이고 있다. 7월에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달 초에는 세계적인 에너지 전문지 플래츠(Platts)로부터 '올해의 정제판매수송기업상(Downstream Operations of the Year)'을 수상했다.

수베이 CEO는 소방관을 후원하고 천연기념물인 두루미,수달 등의 서식지를 보전하는 사업에 관심을 쏟는 등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를 지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은 경영으로도 이어져 지난 9월에는 청정 휘발유 원료(알킬레이트)를 만드는 설비 공정을 완공하기도 했다.

그는 "내년에도 정유업계는 힘든 해가 될 것 같다"며 "경제 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기업이 해야 할 사회적 책무를 게을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글=이정선/사진=정동헌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