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가 두 달 가까이 진행한 '조두순 사건' 진상 조사에서 담당 검사가 결정적인 증거를 뒤늦게 제출하는 바람에 피해 아동이 법정에 다시 서는 고통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위는 이렇다. 경찰은 '검은 머리에 안경을 안 쓴' 조두순을 체포한 직후 심문 장면을 카메라에 녹화해뒀다. 항소심 공판에서 조두순은 꼼수를 부렸다. 흰색 염색머리에 안경을 착용하고 나와 범행을 부인했다. 피해 아동이 '범인은 검은 머리이고 안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 증언을 뒤집기 위해서였다. 조두순의 변호인은 피해 아동을 법정에 세우자고 주장했다. 어린이는 결국 증언대에 서서 악몽의 시간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어린 피해자의 재진술은 검찰이 조금만 세심했더라면 안 했어도 될 일이었다. 원래 모습이 담긴 경찰의 녹화 CD를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것은 선고 하루 전이었다. 조두순의 항소는 기각됐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검찰이 반대했는 데도 법원이 피해 아동에 대한 증인 신청을 결정해 불가피하게 나중에 CD를 제출하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담당 검사가 CD의 내용을 제대로 알고 이를 재판부에게 미리 알렸다면 어린이는 증언대에 다시 서지 않아도 됐다.

조사 결과 검찰은 피해 아동의 가족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 아동의 어머니는 조두순 사건발생 이후 수사과정을 보기 위해 검찰에 형사기록 열람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안산지청 소속 검찰청 직원은 "민감한 시기에 왜 기록을 보려고 하느냐"며 보지 못하게 했다.

이처럼 검사의 대처가 허술했음에도 대검찰청 감찰위원회는 14일 담당 검사에게 가장 가벼운 '주의'라는 권고안을 냈다. 감찰위는 담당 검사가 법조문을 잘못 적용했고,어린 피해자의 진술녹화를 반복한 점만을 징계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담당 검사가 수사기록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사실을 감찰위가 파악하지 못했다면 문제다. 수사검사가 어린 피해자에게 조금만 더 세심했더라면, 증거 분석에 조금만 더 심혈을 기울였다면, 어린아이가 법정에 서서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피해 아동의 증언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도 안타깝고 가슴아프다.

서보미 사회부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