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주인임을 사칭하는 사기꾼에 속아 집이나 땅 살 돈을 다 날리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기꾼들이 진짜 소유자를 확인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부동산 거래 관행을 악용해 주인 행세를 하면서 남의 부동산을 팔아먹고 도주하는 사례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피해자는 권리관계를 확인하고 설명할 책임이 있는 공인중개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모든 손해를 배상받을 수 없는 데다 공인중개사가 무일푼이면 소송에서 이겨도 돈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

◆날고 기는 사기수법

경찰은 지난달 부산에서 시가 1000억원대의 남의 땅을 처분하려던 토지사기꾼들을 검거했다. 또 최근 경기도 남양주시에선 남의 땅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계약금을 받고 달아나 버린 사건이 3건이나 나왔다.

남의 땅을 팔아먹는 사기꾼들은 주로 주인이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거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땅을 노린다. 이들은 주민등록증과 인감증명서를 위조해 남의 땅을 담보로 대출받거나 제3자에게 팔아 먹는다. 대담하게 관련 서류를 조작해 남의 땅을 상속까지 받은 뒤 팔아먹는 사기꾼도 있다.

아파트의 경우 주로 가격이 급등하면서 매물이 귀할 때 사기꾼들이 활발히 활동한다. 중개업자는 급한 마음에 진짜 주인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계약부터 체결시킨다. 이때 중개업소들은 관행상 매도자가 제시하는 주민등록증과 등기부등본에 나와 있는 인적사항이 일치하는지 정도만 확인한다. 나중에 알고 보면 집주인은 따로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주민등록증 위조는 식은 죽 먹기다. 심지어 집문서(등기권리증) 상속서류까지 위조하는 세상이다.

세입자가 집주인 행세를 하면서 집을 팔아먹거나 전세금을 떼어먹는 경우도 자주 적발된다. 주로 월세로 살고 있는 세입자가 이런 사기를 친다. 집을 점유하고 있는 데다 진짜 주인의 인적사항도 알고 있어 사기치기가 비교적 쉽다.

이혼을 앞둔 부부가 남편(또는 부인) 명의로 된 아파트를 몰래 팔고 도주하는 사례도 목격된다. 한집에 살고 있는 만큼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확보해 쉽게 위임장을 만들 수 있다. 자식이 부모 재산을 몰래 팔아 먹거나,부모가 자식 재산을 팔아 먹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원주인은 부동산을 되돌려 받게 되지만 산 사람은 돈을 날리게 된다.

◆공인중개사 책임은 30~80%

중개업소를 통해 거래한 경우 피해자는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거래 신고에 관한 법률'은 공인중개사에게 권리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해 확인하고 설명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법원은 중개업소의 과실 정도에 따라 피해자에게 30~80%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하고 있다. 실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8월 공인중개사 소개로 아파트를 사려다 계약금 사기를 당한 장모씨가 공인중개사 김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김씨가 손해액의 절반인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07년 장씨는 김씨의 소개로 서울 대치동에서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하고 매도자에게 계약금과 중도금 2억원을 건넸다. 그러나 잔금날 매도자가 나타나지 않아 급히 계약한 집으로 달려가 보니 실제 주인이 따로 있었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소송에서 이겨도 손해를 완전히 메울 수 없다. 법원은 피해자도 진짜 주인을 확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으로 봐서 중개업소에 100% 책임을 지우지는 않는다. 게다가 중개사가 무일푼이면 소송에서 이겨봐야 돈을 받을 길이 없다. 소송으로 마음 고생을 하는 것은 물론 아까운 돈과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

◆등기권리증 · 재산세납부 영수증까지 확인해야

이 같은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것은 진짜 주인을 철저히 확인하지 않는 부동산 거래 관행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은 "계약일에 단순히 등기부등본과 주민등록증만을 대조할 게 아니라 집문서와 땅문서까지 가지고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문서와 땅문서까지 위조해 사기를 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재산세 · 종합부동산세 · 관리비 · 수도 · 전기요금 영수증까지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사기꾼들이 이런 것까지 미리 위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대리인과 계약을 체결할 땐 반드시 집주인이 직접 발급한 위임장을 첨부받아야 한다.

부동산 전문인 천지인합동법률사무소의 남기송 변호사는 "매도인의 신분 확인을 위해 계약 체결 때부터 등기권리증 등을 들고 나오라고 하면 집주인이 '기분 나쁘다'며 거래처를 바꾸는 게 현실"이라면서도 "사기꾼에게 걸리면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릴 수도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진정한 소유자를 확인해 잘못된 거래 관행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