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퀸' 김연아(19.고려대)가 마지막 시련이었던 '실기고사'까지 훌륭하게 치르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향한 준비를 더욱 탄탄히 했다.

김연아는 5일 일본 도쿄 요요기 제1체육관에서 열린 2009-201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프리스케이팅에서 123.22점을 획득, 전날 쇼트프로그램 점수(65.64)를 더해 총점 188.86점으로 1위에 올랐다.

특히 전날 점프 실수에 석연치 않은 판정이 겹쳐 지난 2008년 3월 세계선수권 이후 1년 9개월여만에 쇼트프로그램 2위에 머문 충격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김연아는 "지난 대회에서 긴장감 조절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번 대회에서는 부담을 털고 내 자신의 연기에 집중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지난 11월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그랑프리 5차 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여자 싱글 사상 최고점(76.28점) 기록을 세우고도 점수에 대한 부담감 탓에 실수를 한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김연아의 코치 브라이언 오서(48) 역시 "5차 대회를 통해 김연아는 오히려 상승 동력을 얻었다"며 한 차례의 실패가 좋은 약이 됐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도쿄에 도착한 김연아에게는 한 차례의 시련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깨달음대로 한 번 실수하더라도 딛고 일어서 스스로를 조절하며 연기를 펼칠 수 있는지 점검하는 '실기고사'를 치르게 된 것이다.

시즌 최고점에서 경쟁자들에게 20점 이상 앞서 우승이 확실시되던 상황이었지만 4일 쇼트프로그램 경기에서는 연기 직전 러츠 점프를 연습하다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크게 넘어지는 흔치 않은 일을 겪었고, 그 일로 리듬이 깨지는 바람에 트리플 플립 점프(기본점 5.5점)에서 1회전밖에 하지 못하고 내려와 0.2점밖에 챙기지 못했다.

또 '필살기'나 다름없는 첫 번째 과제였던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기본점 10.0점)는 안정적으로 처리하며 가산점 1.6점까지 끌어냈으나 테크니컬 패널이 회전 수가 부족했다며 다운그레이드시키는 바람에 기본점을 7.3점밖에 챙기지 못하는 등 악재가 속출했다.

하지만 타고난 '강심장' 김연아는 5일 프리스케이팅에서 잇단 악재에도 흔들림 없는 연기로 위기를 정면 돌파하며 스스로를 더욱 단련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연아는 먼저 프리스케이팅 첫 과제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착지가 불안해지는 바람에 연결점프를 더블 토루프로 처리하는 데 그쳤다.

전날의 석연찮은 판정의 기억이 겹쳐 정신이 흐트러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연아는 쇼트에서 0.2점을 받는 데 그친 트리플 토루프를 무리 없이 소화해내며 곧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연기 시작 2분이 넘어가며 체력과 싸움이 시작된 직후 김연아는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 점프에서 다시 한 번 회전수 부족으로 4.00점밖에 따내지 못하며 흔들렸지만 곧바로 트리플 살코와 트리플 러츠 등 연달아 점프를 성공시키며 정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스스로 이번 대회의 키포인트가 될 것으로 지목했던 긴장감과의 싸움에서 멋지게 승리한 김연아는 결국 이틀 연속 계속된 시련을 딛고 2년 만에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을 되찾아왔다.

이처럼 직접 극도의 부담과 싸워 이기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김연아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도 한 단계 더 성숙한 모습으로 출전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만약 이런 일이 밴쿠버에서 일어났다면 '미리 겪어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지 않겠는가"라던 오서 코치의 말대로 이미 넘어서 보았던 어려움은 더 이상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연아 역시 "앞으로 보완할 점을 더 잘 알고 더 낫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고 이번 대회의 의미를 전했다.

(도쿄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