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식도암 판정을 받고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67세 나이로는 견디기 힘든 수술이었다. 수술 후 6번의 항암치료가 이어졌다. 몸무게는 124㎏에서 82㎏으로 빠졌다.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은 게 지난 9월.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는 칠레에서 26시간 비행 끝에 한국으로 날아왔다.

칠레 와이너리 몬테스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더글러스 머레이(사진)의 사연이다. 그는 한국의 '국민와인'이란 별칭을 얻은 '몬테스 알파'를 생산하는 몬테스가 6년째 여는 연말행사인 '몬테스의 밤'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1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만난 머레이는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수술과 항암치료의 고통은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평생 해온 일을 그만둘 순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20년 전에는 피부암에 걸렸죠.이번에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치료를 받았고 결국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체력이 약해진 탓에 올해는 '몬테스의 밤' 행사시간을 낮으로 옮기고 명칭도 '엔젤쉽 위드 M'으로 바꿨습니다. (웃음)"

조부가 스코틀랜드에서 칠레로 이주한 탓에 영국식 이름을 가진 머레이는 칠레의 유명 와이너리 산페드로에서 해외시장을 담당하다 46세이던 1988년 아우렐리오 몬테스,알프레도 비다우레와 함께 몬테스를 설립했다. 올해로 21주년인 '젊은 와이너리'는 현재 세계에서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칠레 와인산업의 성공 신화로 불리며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연구 사례가 되기도 했다.

머레이가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방한한 것은 몬테스가 국내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1997년 처음 수입된 '몬테스 알파'는 지난해 70만병 이상 팔렸고,올 9월까지 누적 판매량 300만병을 돌파했다. 단일 브랜드로 사상 최대 규모다. 몬테스는 전체 생산량의 95%를 수출한다.

창립자인 만큼 머레이의 흔적은 몬테스 와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천사' 이미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머레이는 천사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있다. 그는 "나에게 두 번의 암이 찾아왔고 그 전에도 교통사고 등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는데 아직 살아있는 것은 천사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덕분에 지난해 출시한 '나파 엔젤'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천사가 들어가 있다.

또 '몬테스 슈럽'은 히브리어로 천사를 '슈럽(Cherub)'이라고 부른 데서 이름을 따왔다. 이 와인은 2006년 루게릭병으로 사망한 공동 창업자 비다우레를 추모하기 위한 것.몬테스와 국내 수입사인 나라식품은 비다우레와 비슷한 병에 걸린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2005년부터 '몬테스의 밤' 수익금 일부를 한국근육병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와인시장이 어려운 데 대해 그는 "사람들이 돈을 아낄수록 자신이 아는 와인을 구매한다"며 "소비자들이 '몬테스는 가격대비 맛이 훌륭한 와인'이라고 인식하고 있어 되레 위기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