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제작발표회

"이번 작품이 101번째가 아니라 새로운 데뷔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영화의 거장인 임권택(73) 감독은 1일 오전 명동 세종호텔에서 열린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제작 발표회에서 101번째 영화를 만드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임 감독은 "이번 데뷔작으로 지금까지 만들어 온 임권택 느낌이 나는 임권택 영화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새로운 임권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통 한지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한지를 널리 알리려는 전주시의 여러 사업 중 하나로 기획돼 전주국제영화제가 제작하고 전주시가 제작을 지원한다.

순제작비 20억원을 들이는 이 작품은 임 감독이 처음 디지털로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임 감독은 "한국인의 삶과 역사, 문화를 영화에 담아 세계에서 보편성을 얻어내고 우리 안에서도 소중한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다"며 "무엇을 해야 그런 영화가 될지 막연했는데 마침 영화제에서 그런 제의를 받고 앞뒤 없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막상 한지 안으로 들어오니 워낙 깊고 넓은 세계라 처음에는 당황했고 2년 동안 한지에 묻혀 살면서 후회도 많이 했고 절망스럽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고통이 좋은 배움이었고 여기까지 잘 왔구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임감독은 처음 디지털로 작업하면서 지금까지 함께 호흡을 맞췄던 정일성 촬영감독 대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황기석 촬영감독과 함께 일하게 됐다.

임 감독은 "기존에 해왔던 것을 버리고 디지털이 해낼 수 있는 특징과 장점을 배워가고 싶다"는 진지한 각오와 함께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정일성 감독과는 현장에서 농담도 주고받고 했는데 젊은 감독과 농담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사람들끼리 놀아 나를 외롭게 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네요.

허허"
영화는 5급 사무관이 되는 것이 꿈인 7급 공무원 종호가 승진을 위해 시청 한지과로 옮기고 나서 한지의 세계에 빠져들어 한지를 일이 아닌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천년 가는 한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지원이 종호의 작업에 함께한다.

임 감독은 주연을 맡은 두 배우 박중훈과 강수연과의 인연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박중훈은 오래 전부터 같이하고 싶은 배우였는데 이상하게 안 만나졌어요.

'이러다 저 연기자와는 못하고 영화 인생을 끝내지'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이번에 만나게 됐습니다.

강수연과는 둘이 영화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딱 두 작품이었죠. 강수연도 나도 젊은 나이였으니 언젠가 나이 들어서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
종호 역을 맡은 박중훈도 "'태백산맥' 당시 제안을 받았지만 여러 이유로 하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며 "감독님께 강수연 씨와는 '씨받이' 같은 좋은 영화 찍으셨으니 저는 '씨돌이' 같은 역이라도 시켜달라고 농담했었다"고 말했다.

또 "강수연 씨와는 20년 전에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에서 청재킷 입고 만났는데 40대가 돼 다시 만났다"며 "보고 싶은 친구를 근사한 장에서 만나 기쁨이 크다"고 덧붙였다.

지원 역의 강수연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이후 20년 만에 임 감독을 다시 만났다.

강수연은 "임 감독님과 함께 한 두 작품으로 내 인생이 결정됐다"며 "다시 임 감독님의 영화를 하면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영화는 다음 달 초 촬영에 들어가 4월 전주영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eoyy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