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접대,사전개봉,불법감청 등 추문 잇따라

서울대와 고려대, 성균관대 등 국내 주요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함 사전개봉과 불법감청, 성추행 의혹 등 논란과 추문이 끊이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건국 이후 민주화 운동의 성역으로 자임하며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섰던 대학들이 대표를 뽑는 선거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자 순수한 상아탑이 기성 정치권의 타락상을 닮아가는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총학은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당선시 양주 사주겠다" = 최근 고려대에서는 특정 선거본부의 부총학생회장 후보가 선거운동 과정에 주변에 '당선되면 양주를 사겠다'고 말했다는 의혹이 학내 재학생 커뮤니티 익명 게시판 등에 올라 논란거리가 됐다.

해당 부총학생회장 후보는 공과대 선관위원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한 말이 와전된 것이라며 "친구들 사이에 잘 되면 양주를 사라는 말이 오갔고 그곳 분위기상 진지하게 거절할 수 없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고려대 동문들 사이에서는 해당 학생이 '당선되면 룸살롱에 데려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와전돼 '후배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개탄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서울대는 이달 17∼25일 치러진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 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들이 봉인된 투표함을 사전에 몰래 열어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부 투표함의 봉인이 미리 개봉된 흔적이 발견됐고, 투표함 개봉에 선관위원들이 개입된 것으로 의심할 만한 내용이 담긴 2박3일 분량의 녹음 파일을 한 선거본부가 공개했기 때문이다.

공개된 녹음파일은 의혹 제기 과정에 불법감청까지 동원된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증폭됐다.

성균관대 총학선거에서는 애초에 출마한 2개 선거본부 후보가 성추행 의혹이나 경고 누적으로 모두 자격을 잃어 지난 26일까지 후보자 등록을 다시 했다.

하지만, 재등록한 두 선거본부는 성추행 의혹 등으로 자격을 잃었던 기존 두 선본이 인적 구성이나 선본 이름 등만 바꾼 것에 불과해 자격 시비가 불거졌다.

이화여대 총학생회 선거에는 당초 3명의 후보가 출마했지만 한 후보가 사전선거운동 등 3회 경고 누적으로 자격을 박탈당했고, 다른 한 후보는 "공정선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자진해서 사퇴했다.

이대는 남은 한 개 선거본부 후보로만 선거를 진행했지만, 투표율이 50%를 넘지 않아 결국 선거가 무산된 상태다.

◇ "학생들 무관심, 학생회 활동 쇠퇴가 원인" = 이렇게 대학 총학생회 선거가 파행으로 치닫는 것에 대해 대학 관계자들이 꼽는 가장 큰 원인은 학생들의 무관심에 따른 총학선거의 낮은 투표율과 학생회 활동의 급격한 양적ㆍ질적 쇠퇴다.

선관위원들이 투표함을 몰래 열어봤다는 의혹이 이는 서울대는 과거 중립적 인사 1명과 2명의 서로 다른 선거본부원에게 투표함을 지키도록 했지만, 지금은 이런 규정이 사라졌다.

밤에는 투표함을 보관한 장소의 문을 철저히 봉인하던 관례도 없어졌다.

서울대 공대 대학원생인 박모(30)씨는 "2003년 서울대 총학 사상 처음으로 투표율 저조로 선거가 무산된 이래 엄격했던 선거세칙을 완화했다.

요즘 세상에 잠근 문을 밤새워 지키라면 누가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인력 부족으로 절차상 문제가 있는 걸 알면서도 규제를 완화했지만 최소한의 신뢰가 있었기에 지금껏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씨는 "하지만 이번 사건을 보면 학생 사회에서조차 더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저조한 참여율과 인력부족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결국 비슷한 일이 재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졸업생은 서울대생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를 통해 "총학이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비생산적 갈등과 기성 정치판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 기성정치에 뛰어들기 위한 연습의 장으로 전락한다면 다시는 세워지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를 준비하는 이들이 학생사회의 순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정책ㆍ기조로 경쟁하기보다는 인맥ㆍ관계 중심으로 선거가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풍토 때문이다"고 진단했다.

고대 의대 98학번 이모(30)씨는 "2000년 이후 학생회 활동을 하던 선후배 간에 단절이 일어나면서 예전 당연했던 최소한의 민주적 원칙조차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추문으로 점철된다면 차라리 발전적 해체가 나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송진원 기자 hwang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