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0월 고종 당시 모습으로 복원

조선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정문이자 남대문인 광화문(光化門)이 고종시대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모습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144년 만에 다시 상량(上粱)을 한다.

2006년 이후 광화문의 원위치 복원 사업을 진행 중인 문화재청은 27일 오후 4시 현장에서 상량식을 갖고 제 모습을 찾기 위한 막바지 작업에 들어간다.

상량식은 목조 건축에서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는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이날 상량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인 종묘제례 보존회가 상량문 봉안(奉安) 의식을 거행하고 문화재 전문가 및 관련단체, 공사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상량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大木匠) 기능보유자 신응수씨를 비롯한 많은 전통 건축 장인이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리는 등의 목조 가구재 조립을 마친 다음에 이뤄진다.

상량문은 서예가인 김양동 계명대 서예과 석좌교수가 글씨를 썼다.

문화재청은 이날이 144년 전인 1865년, 고종이 광화문을 중건(重建)하면서 상량한 뜻깊은 날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복원은 2006년 12월 '경복궁 광화문 제모습 찾기' 선포식을 시작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인 구 광화문 철거, 원위치 확인을 위한 발굴조사, 가림막 설치, 육축(陸築.성문을 축조하기 위해 큰 돌로 만든 성벽) 축조 등의 과정을 거쳤다.

상량이 끝난 뒤에는 추녀와 서까래 설치, 지붕 기와 잇기, 단청 등을 거쳐 내년 10월 광화문 복원은 대단원을 고할 예정이다.

현판은 1900년대 초 사진을 근거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디지털 복원기술로 원형 복원한다.

광화문은 조선 태조 4년(1395)에 경복궁의 정문으로 지어져, 세종 때 광화문이라는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으나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소실됐다.

그 뒤 고종 2년(1865)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에 중건(重建)됐으며 경술국치 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신축함에 따라 1926년 해체돼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옮겨졌고, 한국전쟁 때에 목조부가 소실되고 석축부만 남게 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68년 광화문은 그의 한글 친필 현판을 달고 중건됐지만, 당시 중앙청(中央廳)으로 사용하던 옛 조선총독부 청사 축에 맞춰 건립되면서 원래 위치에서 옮겨지고 더구나 목조건축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옛 총독부 청사가 철거됨에 따라, 이후 광화문을 원래 위치에 목조건축으로 다시금 중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복원을 시작했다.

<사진 설명 = 상층 공포 및 보 조립, 육축 설치 공사/ 문화재청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kimy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