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세종시 설계를 총지휘했던 안건혁 서울대 교수(전 세종시 총괄기획가 · 사진)가 25일 "중앙부처가 세종시로 모두 안 내려갈 거라면 차라리 경제중심도시로만 건설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임시 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할 당시에도 KAIST 선임연구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는 이날 서울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린 건설산업비전포럼(건설업 경영인 등 모임) 조찬토론회에서 '세종시 기본계획과 자족성 확보 방안'에 대해 주제발표를 한 뒤 기자와 만나 "시대 상황이나 여건이 변화하면 계획은 바뀔 수 있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그는 "반쪽 행정수도의 비효율 등 문제가 적지 않고 경제 여건이 많이 변화해 세종시 건설이 차질을 빚고 있다"며 "세종시 건설 현장엔 땅만 파헤쳐져 있지 사업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정치적 목적에서 계획을 변경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합리적으로 수정을 가할 근거는 충분하다"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전문가들이 참여해 더 좋은 안이 나오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중앙부처가 전부 이전하지 않느냐,일부라도 이전하느냐'로 이슈가 좁혀지는 것도 마뜩지 않아 했다. 중앙부처가 전부 내려가더라도 청와대와 국회는 빠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반쪽만 내려가선 제대로 된 행정도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중앙부처 일부만 간다면 더욱 안 될 말"이라며 "차라리 행정도시를 만들지 않는 게 낫다"고 했다. 그는 "내가 설계하기 전인 2004년 위헌 결정이 났을 때 포기하는 게 옳았다"는 말까지 했다.

안 교수는 '50만명 도시 건설'이란 계획의 부실도 지적했다. 세종시 인구계획은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행정수도를 제대로 만들려면 100만명 도시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30만명 얘기도 나왔는데 이 정도로는 수도권 과밀 해소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해서 50만명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 그는 "문제는 '인구 50만 도시'라는 그림만 그렸지 구체적 안이 없다는 것"이라며 "'30만명만 채워 놓으면 다음은 저절로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